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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아프간 통역사 구출하라" 작전명 '디지털 덩케르크' 돌입

중앙일보

입력 2021.08.23 17:43

업데이트 2021.08.23 17:58

지난 17일(현지시간) 미 공군 C-17 수송기를 타고 탈출하는 640여 명의 아프간인들. [AFP=연합뉴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 공군 C-17 수송기를 타고 탈출하는 640여 명의 아프간인들. [AFP=연합뉴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직후인 지난 16일(현지시간) 미 육군 퇴역 대령인 마이크 제이슨(48)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과거 이탈리아 국방연구소에서 함께 일했던 아프간 고위급 장교의 메시지였다. 그는 탈레반에 쫓겨 가족과 함께 수도 카불 모처에 숨어 있다며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까지 이동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다.

제이슨은 곧바로 아프간 장교 구출 작전팀을 꾸렸다. 퇴역한 동료 수십 명과 함께 탈레반의 눈을 피해 이동할 수 있는 길을 탐색했다. 주로 소셜네트워크(SNS)에서 정보를 모았고, 이동 가능 경로를 지도로 그려 문자 메시지로 전달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 육군 퇴역 대령인 마이크 제이슨이 트위터를 통해 제공한 탈레반 검문소 상황. [트위터 캡처]

지난 19일(현지시간) 미 육군 퇴역 대령인 마이크 제이슨이 트위터를 통해 제공한 탈레반 검문소 상황. [트위터 캡처]

아프간 장교는 제이슨에게 받은 정보를 토대로 조금씩 이동했고 지난 18일 제이슨의 휴대전화에 “공항에 무사히 도착했으며 가족과 함께 수송기 탑승을 기다리고 있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미 퇴역 군인 네트워크의 아프간인 구출 작전 ‘디지털 덩케르크’는 이렇게 시작됐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침공으로 프랑스 됭케르크(Dunkirk) 해안에 고립된 병력 40여 만명을 탈출시키기 위한 연합군의 철수 작전 ‘덩케르크’가 아프간 사태에서 재현되고 있다.

미 육군 퇴역 장교인 마이크 제이슨. [트위터 캡처]

미 육군 퇴역 장교인 마이크 제이슨. [트위터 캡처]

22일 폭스뉴스는 미군 통역사 등 미국을 도왔던 아프간인을 구출하기 위한 운동이 ‘디지털 덩케르크’ 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SNS에서 탈레반 검문소 관련 정보를 모으고 위성 사진을 분석해 통역사들에게 제공한다. 당초 퇴역 군인 수십 명으로 시작한 이 활동에는 이제 위성 사진 분석가, 목사, 가정주부, 학생 등 수십 만명이 동참하고 있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SNS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요원들의 개인 정보는 모른다.

전 CIA 분석가이자 아프간 참전용사인 맷 젤러도 과거 자신을 도왔던 아프간 통역사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디지털 덩케르크’에 합류했다. 그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지난 20년간 미국을 도왔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탈레반의 표적이 된 집단”이라며 “전직 미군으로써 이들을 탈출시킬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사진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사진 영화 '덩케르크' 스틸 이미지]

젤러에 따르면 현재 아프간에 갇힌 통역사와 그 가족은 최소 2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탈레반은 대외적으론 서방에 협력한 아프간인을 용서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통역사의 먼 친척까지 색출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게 젤러의 설명이다. 자원봉사단체 ‘노 원 레프트 비하인드’도 지난 몇 년 동안 300명 이상의 통역사와 그 가족들이 미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탈레반에 살해당했고, 앞으로 통역사 사살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젤러는 주로 한밤중 실시간으로 통역사들의 이동 경로를 안내한다. 위성 사진을 분석해 상황을 파악하고, 문자 메시지로 전달한다. 그러나 통역사들의 위치도, 탈레반 검문소의 상황도 시시각각 바뀌다 보니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카불에서 이미 30여 명을 탈출시킨 ‘뉴욕 디지털 덩케르크’ 소속의 젠 윌슨(35)도 “현지 정보가 실시간으로 바뀐다는 게 가장 큰 난관”이라며 “새로운 정보가 지속해서 필요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1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 해병대가 미국인 대피를 돕고 있다. [AP=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 해병대가 미국인 대피를 돕고 있다. [AP=연합뉴스]

목숨을 걸고 공항에 도착해도 끝난 게 아니다. 비행기를 타기까지 물도 음식도 화장실도 없이 최대 9~10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여기에 탈레반이 무작위로 총을 쏘고 있어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통역사 가족 중 일부는 미국 시민권이 없어 공항에서 생이별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야말로 “상상 그 이상의 최악의 조건”이라고 젤러는 부연했다.

젤러는 “통역사들은 눈과 귀가 돼 주었던 사람들”이라며 조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이라도 이들을 구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이 통역 이전에 문화적 맥락에서 전투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도와줬다며 미군에게 필수적인 인력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들을 대피시키지 않으면 탈레반에 의해 목숨을 잃을 것이고, 우리는 평생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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