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서 만난 남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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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30억 아시아인들의 대축제인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이 22일 화려한 막을 올렸다.
13억 인구의 중국이 2000년대의 도약을 다짐하며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이번 대회는 개막 이틀전에 아시아의 결속을 깨뜨리고 세계평화를 짓밟은 이라크와 그에 동조한 요르단을 축출함으로써 단결ㆍ우의ㆍ진보를 슬로건으로 내건 이번 대회의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번 대회는 이런 불상사에도 불구하고 36개국에서 6천여명의 선수가 참가,아시아경기사상 최대규모의 행사가 되었다.
그러나 요즘 북경에서 보내오는 기사나 사진ㆍTV화면을 보고 있으면 이런 화려한 축제의 설렘에 앞서,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는 것이 있다. 바로 남북 선수단끼리의 다정한 모습이다.
선수단이 처음 도착한 지난주 남쪽의 남녀 사이클 선수들이 북쪽 코치와 서로 어깨를 얼싸안고 다정하게 웃는 사진이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 해후는 어깨를 잡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꿈에도 소원은 통일…』하고 소리높여 함창까지 했다.
그리고 그들은 연습도 같이하고 서로 사이클 손질도 해주면서 『꼭 중국을 물리치자』고 다짐도 했다.
북경아시안게임은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그동안 다듬고 가꾼 기량을 마음껏 펴고 겨루는 스포츠의 제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번 북경대회는 단지 금메달을 몇개 더 따내느냐 하는 그런 대회만은 아니다.
남북의 젊은이들이 한 데 어울려 그동안 만리장성보다 더 높고 길게 쌓였던 「마음의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단결ㆍ우의ㆍ진보를 재확인하는 그런 자리인 것이다.
더구나 이번 대회는 미수교국인 중국에서 열리는 데다가 2백만 가까운 중국동포들이 지켜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들에겐 남도 없고 북도 없다. 다만 꿈에도 잊지 못하는 조국의 젊은이들이 선전분투하기만 바랄 뿐이다.
그러나 이번 북경대회를 보는 우리의 마음에는 한가닥 아쉬움도 있다.
2년전 서울올림픽 영광이 되새겨지기 때문이다. 그 단합된 모습과 활력이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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