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월요인터뷰

취임 100일 맞은 이장무 서울대 총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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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대 제24대 이장무 총장이 취임한 지 100일을 맞았다. 그는 언론과의 첫 인터뷰를 중앙일보와 했다. 때마침 올해는 서울대 개교 60주년이다. 인생으로 치면 서울대는 이제 한 갑자(甲子.60년)의 삶을 갈무리하면서 새로운 출발점에 선 셈이다. 공대 출신인 이 총장은 스스로를 눌변(訥辯)이라고 했다. 말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데 서울대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대학의 자율은 왜 필요한지 등의 대목에 이르자 이 총장은 열변을 토했다.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대 총장실에서 2시간 동안 이뤄졌다.

-서울대 입시는 그동안 대학입시를 규정하는 틀이었다. 한국 교육이 문제라면 서울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학생 선발 방식은) 대학에 맡겨야 한다"고 했는데.

"얼마 전 베이징대.칭화대.교토대.대만대 등 아시아 지역 총장들 모임에서 우리나라 입시에 대해 얘기해줬더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베이징대.도쿄대는 국가 시험과 본고사로, 게이오대는 3분의 1은 게이오고 출신, 3분의 1은 고교장 추천, 나머지 3분의 1은 시험으로 뽑는다. 다양한 선발 방식을 대학 자율로 정한다. 치열하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대학에) 들어오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치열하지만 공정한 선발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우리 공대의 김도연 학장이 칭화대에 갔는데 오후 11시에 기숙사 불이 강제로 꺼지니까 학생들이 손전등을 비춰가며 공부하더란다. 우수한 아이들끼리 모이니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을 어떻게 선발하고 가르칠지는 정말 중요한 문제 아닌가. 대학 입시와 교육에 대해 자율권을 줘 대학이 알아서 인재를 선발하고 가르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도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데, 우리처럼 교육부가 대학 입시를 간섭하고 통제하는 나라가 있나.

"우리 대학의 고민, 국가의 고민이 있다. 총장으로선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세계로 진출하게 하고, 국가 핵심 경쟁력의 중심이 되게 하려는 바람이 있다. 반면 국가는 사회의 안정성 측면에서 평등주의를 인정해야 하고 그걸 전적으로 나쁘다고 볼 수도 없다. 대학 내의 요구와 대학 외적인 요구가 서로 충돌하는데 모두가 이기는 윈-윈(win-win)의 방법이 뭘지 고민하고 있다."

-영국 더 타임스가 지난달 8일 서울대를 세계 63위 대학으로 꼽았다. 그 전해의 93위보다는 향상됐지만 한국보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중국의 베이징.칭화대가 서울대보다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서울대는 도시 국가인 싱가포르의 난양 기술대보다 떨어졌다. 혹시 국내에서만 안주하는 건 아닌가.

"국민이 서울대에 보내준 성원과 기대에 비해 아주 불만스러운 수준이다. 하지만 앞으로 20년 내에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도약하겠다. 하버드대나 베이징.칭화대에 비해 지원이 충분치 않은 여건 속에서 현재의 모습을 이뤄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서울대는 교육부의 대학 지원금(BK21)의 3분의 1을 가져가는 등 적잖은 혜택을 받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가 상응하는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서울대 출신 교수 비율이 전체의 90%를 웃도는데 '순혈주의'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당연히 개선해야 한다. 7년여 전부터 신규 교수 채용 시 반드시 3분의 1 이상은 다른 학교나 다른 전공 출신에서 뽑도록 하고 있다. 2006년 신임 교수 중 타교 출신이 21.88%, 타 전공 출신이 20.3%로 합치면 40%대다. 이런 노력을 계속할 것이다."

-논술을 둘러싼 논란이 많다. 논술은 대학 입시에서 꼭 필요한가. 서울대는 앞으로 논술을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제7차 교육과정은 창의적 사고, 통합교과적 접근을 말한다. (논술은) 그 방향과 일치한다. 서울대는 신입생 교양과정에서 인문.자연이 만나는 과목, 글쓰기 과목 등을 장려한다. 기업이 대학 졸업생들에게 요구하는 여러 자질 중 큰 부분이 의사소통 능력이다. 남들과 어떻게 소통하는지, 자기 생각을 어떻게 글로 표현하고 말할 수 있는지다. 논술은 중요하다. 또 논술은 2002~2004년을 제외하고는 과거부터 쭉 있어온 입시제도다."

-하지만 논술이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것은 엄청난 교육열 때문이다. 그런 교육열의 틈새를 사교육이 많이 파고들었다. 수능이 개발됐을 때는 수능 과외, 내신이 강화되니 내신 사교육 광풍이 불었다. 논술도 그런 가운데 생겨났다. 논술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새로운 제도가 생겨났으니 국민이 불안해하고 부담스러워 하는 것에 대해 저도 충분히 마음을 같이하고 있다. 이른 시일 내 우리 논술에 대한 정보를 교사들과 학부모들께 알려드리고 난이도를 조절할 계획이다."

-논술이 어렵다고들 한다.

"국정감사에서 (서울대 문제였던) 존 로크의 '통치론'이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교과서에 있는 내용이다. 수능은 사교육이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강남 학생들이 많이 합격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논술은 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 여러 다양한 풀이 과정과 답이 나올 수 있는 창의적.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사교육에 의존한 학생들이 점수를 못 받도록 하겠다. 이렇게 되면 강남의 학생과 학부모가 강북으로 옮겨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선 고교에는 논술을 가르칠 만한 교사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교육에 의존한다. 서울대 논술시험이 강남 사교육을 없애고 강남의 학부모가 강북으로 이사 가게 할 것이란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게 아닌가.

"앞으로 그렇게 갈 거라는 얘기다.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의존하는 것은 불안감 때문이다. 서울대는 앞으로 논술시험 문제를 내기 전에 일선 고교 교사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듣고 참고할 생각이다."

-학원의 족집게 논술을 막을 방법이 있나.

"다각적인 방법을 고려 중이다. 지금까지도 문제를 출제하기 전에 강남 논술학원의 시험 문제들을 다 검토해 제외한다."

-논술 채점은 공정한가. 교수들에 따라 들쑥날쑥한 게 아닌가.

"논술을 채점할 능력을 가진 교수들이 있느냐는 지적이 있는 걸 안다. 하지만 앞서 얘기처럼 논술시험은 과거부터 있었다. 여러 분의 교수가 채점하고 한 분의 결과가 너무 차이 나면 다시 채점하는 등의 장치가 있다. 논술을 출제하고 채점하는 숙련도도 많이 쌓였다."

-서울대는 앞으로 논술을 강화할 것인가. 평생 글을 써 온 이어령 선생조차 논술 문제가 너무 어렵다고 한다.

"난이도는 계속 연구해야 하지만 변별력은 필요하다. 문제를 너무 쉽게 내서 변별력을 잃고 복권 당첨되듯 서울대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또 서울대가 어떻게 한다고 다른 대학이 따라가는 시대는 지났다."

-대학들이 다양성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인가.

"서울대는 앞으로 중국.인도.러시아 등 외국 인재도 많이 데려오겠다. 서울대는 신입생을 지역균형.특기자.정시모집으로 3분해 선발한다. 고교 간 격차가 존재하는데도 (제도적으로) 고교 간의 격차를 인정하지 않아 불이익을 받거나, 특기자로 인정받는 기회를 갖지 못한 학생들에게 패자부활전처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내신.수능.논술의 세 가지 방식을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재를 다양화하는 서울대의 방법일 뿐이다. 이걸 모든 대학이 쫓아오지는 않는다. 대학에 따라 논술은 50% 반영하는 곳도, 10% 반영하는 곳도 있더라. 한국 사회는 다양화.특성화의 시대로 가고 있고 대학도 마찬가지다."

-국내적으로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지역균형을 이루겠다는 것인가.

"제도상으론 외국 학생들을 제한 없이 뽑을 수 있다. 서울대는 학사과정 2만 명, 대학원생 1만 명 중에서 외국인 학생이 1200명 정도다. 앞으로 3000명 정도는 돼야 한다. 중국.인도뿐 아니라 우리와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인 몽골, 나아가 유럽.미주.아프리카 등의 인재를 데려오겠다."

-어떻게 외국 학생들을 데려오나.

"일본은 이미 10만 명의 외국인 학생과 학자를 유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일본 교수들은 대부분 국내파라 어학능력이 떨어진다. 우리는 대부분 외국에서 교육받은 교수들이라 유리한 점이 있다. 서울대를 아시아 유학생들의 교육 허브로 만들겠다. 교육부와 협의해 일단 사할린 학자.학생 유치를 위한 장학금을 배정키로 했다. 몽골 환경지도자 장학금 등 외국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장학금을 만들어 이들이 한국과 서울대를 제2의 고향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

-서울대가 빈곤층 자녀를 선발할 제도를 준비한다는 말도 있는데.

"미국 대학에서는 입학 사정관제를 두고 있는데, 정부에서 이렇게 해라 하는 획일적인 제도가 아니라 다양한 선발 방식을 쓰고 있다. 또 선발 후에도 A학생이 B학생보다 우수한데 왜 A를 떨어뜨렸느냐는 항의도 없다. 대학의 선발을 신뢰하는 분위기다. 우리 사회도 대학을 믿고 신뢰하는 분위기가 되면 그때 가서는 어려운 학생들이나 과학 등 한 가지에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학생도 선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수능이 1.2등급이 안 되면 아무리 과학적 소질이 뛰어나도 선발할 수 없다. 인위적으로 소득의 몇 %에 있는 학생들을 뽑겠다는 식이 아니다. (경제적 약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고 보고 연구 중이다."

-임기 중에 그걸 하겠다는 것인가.

"내 임기 중에 연구해 놓고 다음 총장 때에는 실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부의 3불 정책(고교 등급제, 본고사 부활, 기여 입학제 금지)을 반대하나.

"대학의 자율이 중요하다. 3불은 우리한테 주어진 제약이지만 현재로선 어쩔 수 없이 수용하고 있다."

정리=권근영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 이장무 총장은 …

1945년생. 경기고.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76년부터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97년부터 2002년까지 공대 학장을 지내 서울대 최장수 학장을 기록했다. 조부는 역사학자 이병도 박사이며 부친은 서울대 농대 이춘녕 명예교수, 동생은 이건무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다. 부인 이옥희(55)씨 사이에 2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