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국력 모을 「대 목표」 세우자/김두겸(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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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속 1백50㎞대로 고속 질주하던 우리경제가 시속 70㎞ 수준으로 뚝 떨어진채 더이상 속력을 내지 못하고 있는 지도 오래다. 속력이 떨어진 원인에 대해선 각계 전문가들의 면밀한 분석으로 이미 다 규명됐고 국민들도 모두 다 잘 알고 있다.
엔진오일이 수명을 넘긴지 오래고 타이어도 바람이 많이 빠져 있다. 디퍼런셜기어에도 이상이 있다. 플러그도 한두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엔진 자체도 낡아 볼링을 해줘야 할 때다. 심한 정체도 한 원인이다.
속력이 떨어진 이유는 이처럼 명쾌하게 밝혀졌는데도 이들 결함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데 문제가 있다.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도 잘 알고 있고 고칠 돈도 충분히 있다. 조금만 협력하면 정체 또한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도 지난 수삼년동안 고칠 생각 하나없이 운행되고 있다. 70㎞의 속력이라도 나고 있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차주도 고칠 엄두를 내지 않고 있고 운전사도 모른체 하고 있다. 타고 있는 승객 또한 이젠 면역이 되어 자기 목적지까지만 안전하게 데려다 달라고 할 뿐이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결함투성이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럴 수 없이 태평이다.
시속 1백50㎞ 속도때의 한국경제는 후진국 경제개발의 대표적 모델로 평가 받았었다. 지금도 중국과 소련은 그 「한국모델」을 배우려고 안간힘이다.
후진국 경제개발론의 교과서가 될지도 모를 한국모델을 다시 한번 음미해 보자.
6ㆍ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엔 사람이왼 아무것도 없었다. 60년 현재의경제규모는 1인당 GNP 90달러,다섯사람중 한명꼴로 실업자다. 자본의 원시축적은 물론 기술자도,조직도 없었다. 경영자도 손꼽을 정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우선 공장짓는 일부터 서둘렀다. 그래야만 물건도 만들고 실업자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장지을 돈이 있을 리 없다. 국내에 돈이 없으니 외국돈이라도 끌어 쓰자. 한국모델의 첫번째 요체는 바로 이같은 외자도입이다.
이젠 생산이다. 그러나 국내엔 자원이 하나도 없다. 원료도,중간생산재도 없다.
물론 기술도 없다. 이것도 외부에서 들여오자. 연료없는 비행기는 뜰 수 없는 법. 그래서 수입,또 수입이다. 그나마 그것도 외상이다. 외상으로 빌린 돈,외상으로 들여온 원료대는 완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갚을 수 있다. 자연 수출은 한국경제의 생명줄이 되었다.
수출드라이브 정책­. 이것이 두번째 요체다.
다음은 경영력과 조직이다. 돈ㆍ기술ㆍ원자재는 외국 것을 이용할 수 있어도 경영력은 국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하늘만 믿고 땅을 파는 대기업가를 육성하자­. 천만다행으로 초인적 국산경영자가 몇사람 탄생했다. 그들은 강력한 정부의 후원아래 한국을 일약 생산ㆍ수출대국으로 부상시켰다.
한국모델의 네번째 요체는 앞의 세가지 목표를 범국민적 지원을 얻어 추진할 수 있었다는데 있다. 그 국민적 컨센서스는 바로 「우리도 잘 살 수 있다」「하면 된다」는 응집력이었다. 이 정신이 있어서 비로소 한국모델 탄생도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은 모두 나름대로의 인생관을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어느 민족이나 국민에게도 각기 고유의 「민족생관」 또는 「국민생관」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 민족의 민족생관은 과연 어떤 것일까.
고장난 자동차를 타고도 고칠 생각을 않는 것,보고도 못본 체,듣고도 못 들은 척 아무일도 않는 것,억지와 큰 목소리가 행세하는 것 등도 물론 우리의 민족생관의 하나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민족에겐 강점도 많다.
결코 굴하지 않는 강인한 끈기와 나도 할 수 있다는 바이탤리티는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든 우리 민족의 자긍이다. 그 끈기와 활화산과 같은 바이탤리티가 있어 끝내 한국모델을 만든 민족이 아닌가. 그런데 그 끈기와 바이탤리티가 서울 올림픽 이후 사라지고 없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할 것 없이 그 어느 한 곳에도 그것을 찾아 볼 수 없다.
「물정부」가 되어서 그런지 관계쪽은 더하다. 군수가 농민들의 위협에 무릎을 꿇지 않나,경찰관이 매를 맞고 버스에 매달린채 끌려가도 당사자들 조차 끽소리 한마디 없다.
국도를 점령한 수재민들에게 붙들려 「피해를 전액 보상할 것을 약속한다」는 무책임한 각서까지 써주는 도지사도 있다.
사회전체가 이처럼 우리민족의 최대 강점인 바이탤리티를 잃고 있는 것은 특히 서울 올림픽 이후 우리가 국민적 목표를 상실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 동안의 「잘 살아 보자」「하면 된다」는 국민적 합의가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 완수를 샴페인 축배로 끝냄으로써 거품과 함께 사라졌다는 시각이다.
이제 다시 이 시대에 걸맞는,국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가 만들어져야 한다.
일본은 「구미를 따라잡자」는 패전 직후의 국민적 목표가 달성되자 이젠 일본 스스로가 「국제 교과서」를 만들자는 새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의 자긍인 바이탤리티를 한 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는 새 목표가 그 어느 때 보다 아쉽다. 그것은 예컨대 「일본을 따라잡자」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목표는 비정치적이고 소박한 것일수록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국민의 힘이 한 곳으로 응집될때 비로소 우리 경제의 속력도 다시 시속 1백50㎞대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국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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