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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북한과 손 끊어라/솔제니친 「러시아재건의 방향」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소 개혁에 침묵지키다 마침내 입열어/11개 공화국 모두 독립허용/공산당 착복재산 반환해야
소련의 변화에 대해 그동안 침묵을 지켜온 소 망명작가 솔제니친이 18일 소­북한 관계단절등을 요구하는 「러시아재건의 방향」이란 장문의 논문을 발표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날 모스크바와 파리에서 동시에 발표된 50여페이지 분량의 긴 글에서 솔제니친은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련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소련의 부를 갉아먹고 있는 나라와 관계를 단절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그러한 나라로 북한을 지목,관심을 모으고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로 지난 74년 소련에서 추방된 이래 줄곧 미국 버몬트주에서 생활해온 그는 지난 7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특별조치로 소련시민권을 회복했으나 아직 완성해야 할 저작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소련당국의 귀국제의를 거부해 왔다.
다음은 18일자 소련공산당 청년기관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와 프랑스의 유력지 르 피가로에 발췌소개된 그의 주장요지.
『현재 소련연방에서 독립하기를 원하는 11개 공화국에 대해서는 독립을 허용하고 러시아ㆍ우크라이나ㆍ백러시아ㆍ카자흐스탄 등 4개 공화국만으로 새로 나라를 만드는게 현명하다고 본다. 새로운 나라의 국호로는 「러시아동맹」이 좋을 듯 하다. 우크라이나 주민들의 독립요구가 진정한 것으로 판명될 때는 우크라이나도 여기서 제외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소련이 해야할 가장 시급한 일들은 네가지다. 첫째,사람들에게 일하는 맛을 줘야 하고 둘째,러시아의 부를 축내고 있는 모든 정권과 관계를 끊는 일이다. 쿠바와 북한이 그 대표적 정권이다. 셋째는 과거 70여년동안 소련공산당이 착복해온 엄청난 부와 재산을 국가에 반환하는 일이며 넷째로는 현 소련정부 부처의 5분의 4를 폐지하고,소련공산당을 경제와 국가운영에서 손을 떼게 해야한다.
소련전체를 비참한 지경으로 만든 중앙통제식 경제체제를 폐기하고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체제를 도입,개인기업가들에게 자유로운 경쟁터를 제공해야 한다. 국가는 독점기업의 출현을 막으면서 모든 종류의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한다.
러시아혁명이 일어났던 1917년 2월의 정치적 무질서를 연상케 하는 정당 난립과 혼란한 정당집회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이미 법률로 채택한 강력한 대통령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소련에 유익할 것이다.
모든 정치적 변화는 기층에서부터 위를 향해 점진적으로 천천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정치생활에 민주적 의식을 불어넣을 수 있고,최저 지방단위에서 최고국가단위에 이르기까지 정치행태를 바꿔놓을 수 있다.
어느 단위에서건 일단 선거로 선출된 사람은 맡겨진 임기동안 만큼은 소속정당을 떠나야 한다. 권력은 국민에 의해 요구된 봉사이므로 정당간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건 정치가 아니라 정신과 도덕이며 이는 법률보다도 우선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와 교사의 가치회복이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들의 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최근 젊은 층에서 나타나고 있는 야만적 서구모방을 경계해야 하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이 글의 말미에서 솔제니친은 자신의 주장가운데 그 어느 것도 최종적인 것은 없으며 다만 몇가지 생각을 제시함으로써 토론의 재료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일 뿐이라고 글을 쓰게 된 배경을 밝히면서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시도해 보지 않을 수는 없었다』고 침묵을 깨게된 자신의 심정을 피력했다.<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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