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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병직 학습효과' 탓에 주부들 "믿을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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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는 3일 오전 권오규 경제부총리 주재로 긴급 부동산 관계장관 회의를 열었다. 점심으로 도시락을 시켜먹으며 2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회의는 전날 오후 갑자기 소집됐다.

추병직(사진) 건설교통부, 장병완 기획예산처 장관과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전군표 국세청장 등이 참석했다. 최근 서울 강북지역의 6억원 이하 아파트값까지 많이 오르는 등 집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 후 정부는 신도시 아파트 등의 분양가를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용적률.건폐율을 완화하고 고속도로 등 기반시설 설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기로 했다.

그러나 기반시설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데 대해 특정 지역 아파트 주민을 위해 정부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또 파주.김포.송파 등의 신도시를 최대한 빨리 지어 시장에 주택을 많이 내놓기로 했다. 최근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전.월세 값을 잡기 위해 다세대.다가구 주택과 오피스텔을 많이 지을 수 있도록 주차장과 분담금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주택담보대출이 급격하게 늘어나지 않도록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지도와 감독을 강화하기로 했다. 금감위는 올 6월 이후 주택 대출을 많이 한 25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대출 규정을 제대로 지켰는지 현장 점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6일부터 2주간 현장 점검을 받게 될 금융회사는 은행 7개, 보험사 6개, 저축은행 12개다.

그러나 당초 거론됐던 주택담보대출 총량을 규제하거나 6억원 이하 주택에 대한 담보대출을 규제하는 방안은 이날 대책에 포함되지 않았다.

?시장이 비웃는 대책회의만 일삼아=정부가 이날 발표한 긴급 대책은 집값 불안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긴박감에서 나왔지만 이번에도 역시 시장의 내성(耐性)만 키울 공산이 크다. 세금 중과, 거래 규제 등 집값 폭등을 초래한 수요억제 정책을 흔들림없이 추진키로 했을 뿐 획기적인 공급대책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요억제책이 추가되지 않은 것도 규제 더미로 얽어놓은 부동산 시장에 더 내놓을 충격요법이 없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날 회의가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 한다는 시그널만 시장에 보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3년간 세금 중과와 대출 억제 등 수요억제책으로 일관한 정부가 주택공급을 늘리겠다는 쪽으로 서서히 방향을 바꾸고는 있지만 공급 시기를 앞당기는 게 쉽지 않다는 점만 확인시켜줬다는 것이다. 송파.검단.파주 신도시가 추진되고 있지만 입주는 2010년 이후에나 가능하다. 그때까지는 공급 부족으로 시장 불안이 여전할 것이라는 얘기다.

이날 긴급회의에서 나온 대책은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묘책이 마땅치 않다는 점만 보여준 셈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추병직 건교부 장관이 자초한 '학습효과' 때문에 "이제는 안 속는다""정부 대책과 반대로 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심리가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은 잡겠다"라거나 "지금 집을 사 봐야 비싼 가격에 살 수밖에 없다"는 발언이 나올 때마다 집값은 오히려 더 올랐기 때문이다.

연세대 경제학부 서승환 교수는 "수요 억제 위주의 현 정책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며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기조가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내년에도 집값 불안 현상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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