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둑 붕괴 “들쥐구멍 탓” 유력/첫 목격군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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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방밑서 흙탕물 솟아흘렀다”/직경 5㎝가량 13개 발견/수압 높아 둑에 쉽게 스며/현지농민 “84년 홍수때도 쥐구멍 막았다”
【고양=이철호기자】 경기도 고양군의 일산ㆍ능곡일대를 물바다로 만든 한강하류 둑(일산제)의 붕괴는 들쥐들이 뚫어놓은 쥐구멍을 제대로 사전에 막지못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밝혀졌다.
고양군 수해대책본부(본부장 백성운고양군수)는 17일 둑붕괴 원인의 자체조사결과 들쥐들이 둑에 뚫어놓은 쥐구멍때문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결론을 내리고 유실되지 않은 주변둑에 대한 정밀조사에 나서는 한편 토목관계 전문기관에 원인규명을 의뢰했다.
대책본부의 이같은 결론은 ▲둑주변이 비옥한 농토로 평소 들쥐가 들끓었고 ▲둑에 쥐구멍이 많이 뚫려있었으나 올여름에는 무성한 잡초때문에 쥐구멍막기작업을 못했으며 ▲둑붕괴직전 누수를 처음 발견한 군인들이 제방밑 쑥대숲에서 20∼30m간격으로 직경 5㎝쯤의 구멍 13개에 흙탕물이 솟아흘렀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책본부는 또 ▲84년에는 물이 둑위로 넘쳤는데도 둑이 무너지지 않았고 ▲87년에는 둑 보강을 위해 내벽 콘크리트공사를 한데다 이번에 둑높이보다 최고수위가 60㎝나 낮아 물이 범람하지 않았는데도 둑이 무너진 것은 쥐구멍 등 제방내부의 다른 붕괴요인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있다.
다시말해 평상시 수위에는 물에 닿지 않았던 둑의 쥐구멍에 수위가 높아져 물이 스며들면서 구멍주위의 모래를 침식시켜 사질토의 제방을 쉽게 붕괴시켰다는 것이다.
이에대해 토목공학 전문가들도 『제방을 무너뜨리는 파이핑(piping)현상(물이 제방속에 스며들어 흙ㆍ모래를 휩쓰는 것)때엔 가장 약한 부분을 골라 무차별하게 물이 새어나오고 누출구멍의 크기도 일정하지 않은 특징을 보이는데 비해 일산제붕괴는 13개 구멍의 크기가 비슷하고 모두 제방 밑부분에 집중돼 있었다』며 『이 높이는 쥐가 구멍을 파기에 적당한 높이고 최초 누출구멍이 5㎝크기로 일정했다는 점에서 들쥐구멍이 제방붕괴에 가장 큰 요인이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제방 바로밑에 있는 논에서 농사를 짓는 최금만씨(52ㆍ고양군 지도읍 백석5리)는 『84년 홍수때도 제방중턱부분의 쥐구멍에서 물이 새어나와 급히 막은 일이 있었다』며 『들쥐가 많아 해마다 벼이삭이 여무는 8월말쯤에는 쥐약을 놓았었다』고 말했다.
고양군청 이영찬산업과장은 『제방에서 쥐구멍이 많이 발견돼 흙으로 메우는 작업을 해왔으나 올 여름에는 잡초가 워낙 무성해 쥐구멍막기 작업을 못했다』고 밝혔다.
이에대해 전 동국대교수 원병휘박사(80ㆍ생물학)는 『우리나라 들쥐의 대부분인 등줄쥐는 폭 20m의 제방은 물론 웃자라는 앞니를 갉아내기위해 두께 30㎝가 넘는 콘크리트도 쉽게 뚫는다』며 『특히 일산제처럼 모래ㆍ점토가 섞인 사질토는 등줄쥐가 땅을 파기 가장 좋아하는 토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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