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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식단장의 「북경대회」 출사표(일요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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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남북한 관계개선에 돌파구”/스포츠 교류가 결국 「엄청난 일」 해내/응원단의 「아리랑」 한목소리에 기대
『영예보다는 책임감에 짓눌려 며칠씩 잠을 못이루고 있습니다.』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단장의 중책을 맡은 장충식 단국대총장(59)은 『그동안 국제대회에 여러 차례 단장직을 맡아왔지만 이번처럼 부담스럽고 한편으로는 가슴설렌 적은 없었다』고 요즘 심정을 토로했다.
그동안 네 차례의 유니버시아드를 포함,이번까지 다섯 차례의 단장직을 맡게 되는데 『대회자체가 아시아경기사상 최초로 우리와 미 수교국인 사회주의국가에서 열리는 데다 시기적으로도 동서와 남북한간의 화해무드가 고조되고 있는 미묘한 때여서 역사적 소명의식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81년부터 지금까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과 대학스포츠위원회(KUSB) 위원장직을 맡아오면서 국내아마추어 스포츠의 숨은 일꾼으로 일해오고 있는 장총장은 『이번 아시안게임이야말로 한­중국,남­북한간의 극적인 관계개선에 돌파구가 열리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며 또 그렇게 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안게임 하나로 무슨 돌파구가 열릴 수 있겠습니까.
『서울올림픽을 준비할 때 누가 그 많은 동구권과 관계를 맺을 것으로 상상이나 했습니까. 개방바람도 큰 작용을 했겠지만 비정치적인 스포츠를 통한 교류가 결국은 엄청난 일을 해내지 않았습니까. 지금의 북한ㆍ중국의 사정이 당시 동구보다 나은 것도 없는 상황이구요.
더구나 이번 대회에 우리가 쏟아부은 물적ㆍ지적 지원은 엄청납니다. 이것은 스포츠만의 차원으로는 볼 수 없는 겁니다. 그들은 배은망덕하지는 않으리라 봅니다.
북한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이번 북한선수단 본부임원에는 과거와 달리 김유순 IOC위원장(단장),장웅 북한 NOC서기국장 등 사교적인 연성인물들이 다수 포진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남북체육회담의 북한측 대표단 중 장웅만 빼놓고는 모두 탈락됐습니다. 체육회담 실패에 대한 문책이라고 듣고 있습니다만 대화가 통하는 인물들이 임원으로 온다는 것은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이번 북경에는 수천명의 남북한 응원단에 수십만명의 중국교포까지 합세,한목소리로 「아리랑」을 부르게 됩니다. 분단의 고통을 이보다 더 크게 느끼는 자리가 있겠습니까. 아마 파급효과가 엄청나리라고 봅니다.』
­장 총장의 단장선임에 체육계에서는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잖습니까.
『이점은 저도 해명(?)을 해야겠습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과거와 달리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지난 7월 선수선발위 자리에서 체육회장한테 일방적으로 통보를 받았습니다.
물론 즉석에서 「못 맡겠다」고 했지요. 체육계에서 별로 한 일도 없이 그동안 단장만 여러 차례 맡고… 또 부단장으로 가시는 김성집촌장님은 제가 휘문중 4년때 담임이었구요.』
­그래도 정부가 장 총장을 택한 이유가 있잖습니까. 체육회담 수석대표도 지내셨고….
『사실 개인적인 명예 때문이라면 끝까지 맡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남북 체육회담의 수석대표로서 단일팀구성 실패에 대한 죄책감도 들고…. 북경에서라도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할 작정입니다. 아마 남이든 북이든 이번 대회기간 중 다음 올림픽에 대비한,아니면 남북 체육교류문제를 상의할 체육회담 재개를 요청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역사학자(동양사학전공)입니다. 3공초기부터 북한을 포함한 공산권과의 스포츠교류를 꾸준히 주장해온 사람입니다. 당시 비웃는 사람이 한둘입니까. 지금은 어떻습니까. 남북화해는 결국 스포츠교류에서 시작될 것이고 그런면에서 이번 아시안게임은 하나의 이벤트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지난 체육회담에서도 남북한 동포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 것도 죄스러울 뿐입니다(당시 장 총장은 정부의 지나친 간섭에 회담대표직 사퇴서를 냈었다).』
­중국통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태어난 곳이 중국 천진입니다. 북경의 관문이지요. 거기서 일곱살까지 살다가 한국에 귀국,13세 때 다시 중국에 들어가서 2년 후 해방이될 때까지 살았습니다. 기억이 생생하지요. 친구들도 있구요. 당시 북경에서 소학교를 다닐 때 달구지를 타고 수도없이 만리장성엘 올라다녔습니다.
만 40년 만인 지난 86년 국제에스페란토대회에 참석차 북경엘 갔습니다(장 총장은 한국에스페란토협회장임). 회사 건물은 많이 들어섰지만 북경의 뒷골목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만리장성 가는길도 단장만 된 게 다를 뿐 그대로구요. 사회주의의 한계성을 그대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중국의 고위스포츠관리들은 대부분 잘 압니다.
하진량 IOC위원은 물론이고 각 경기단체 등과도 지난 80년부터 꾸준히 국제대회에 같이 다녀서 개인적으로도 무척 가깝습니다(장 총장은 구체적으로 누구냐는 질문엔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끝내 함구했다). 그들의 영어가 부족할 때는 제가 중국어 통역도 여러번 해주었지요.』
­이번 대회 2위 목표는 무난하겠습니까.
『낙관합니다. 일본이 86ㆍ88 후 체육계가 일대반성,총력체제로 준비를 해왔지만 우리의 65개(목표)엔 10개 정도로 차이가 날 것으로 봅니다. 어차피 육상ㆍ수영 등 금메달이 많이 걸린 우리의 취약 종목에서는 일본도 중국에 맥을 못추게 되니까 86ㆍ88대회 때 재미를 본 태권도ㆍ양궁 등이 폐지되거나 축소됐다 하더라도 2위 목표는 무난히 달성할 걸로 봅니다.
북한은 선수부족과 국제경험 미비로 잘해야 우리의 절반 정도일 것으로 봅니다.』
­선수단에 대한 당부는.
『자기자신을 억제할 줄 알고 침착ㆍ겸손한 선수만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국민의 성원이 아니라면 대표ㆍ비대표선수가 어디 있고 인기ㆍ비인기종목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북한선수나 임원들에게도 우리선수ㆍ임원을 대하듯 동포애로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북경에서 남북체육교류에 관한 대화가 다시 열릴 것 같습니까.
『글쎄요. 물론 우리는 적극적으로 접촉하고 노력한다는 것을 확고한 방침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북측의 태도입니다.』 <신동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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