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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국회」에 주는 충고/문일현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의회민주주의의 수범국인 영국의 버나드 웨서릴하원의장이 14일 오후 의원회관에서 행한 「의회민주주의」라는 제목의 강연은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우리국회에 대한 따끔한 충고 같았다.
의회가 갖춰야 할 기본조건들이 무엇이며 의회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국회의장이 엄수해야 할 준칙들을 담담히 얘기한 웨서릴의장의 강연은 마치 우리국회를 겨냥한 준엄한 경고로 들리기도 했다.
그는 영국 의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지난 7백년동안 엄청난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변화 속에서 의회제도가 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노력해온 결과라고 평가하면서 『의회가 갖춰야 할 핵심 조건은 절차의 민주성과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춘 논쟁의 진행방법』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과 개인간의 직접적 대립을 방지하기 위해 의원들은 「당신」(You)이라는 2인칭을 사용치 않고 반드시 「존경하는 ××지구출신의원」 「존경하는 ××장관」 등 간접화법을 지금까지 고집하고 있는 영국의회의 관행을 예로 들며 반대파의 의견을 존중하고 동등한 관계에서 예의를 갖출 때만이 의회민주주의가 발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발언자의 견해가 아무리 인기없고 선동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기회는 공정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한 의원이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밤늦도록 관계장관과 논란을 벌이는 일이 있지만 의회는 모든 사람이 관심 갖는 의견을 들어야 하듯 한 사람이 관심을 갖는 문제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다수당이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의회절차를 간소화시키고 싶은 유혹은 항상 있게 마련이지만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절차상의 민주성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적 원칙』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러면서 웨서릴의장은 『논쟁도 없고 시끄럽지 않은 의회는 진정한 의회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의회주의자는 『그러나 가장 효과적인 투쟁은 거리에서보다는 의회』라며 희망을 가지고 원내에서 싸울 것을 권고했다.
이날 강연회장에는 사직서를 낸 평민ㆍ민주당의원들이 한사람도 나오지 않고 민자당의원들만 나와 낮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웨서릴의장의 강연은 욕설ㆍ몸싸움과 극한 대결로 점철돼 있는 바로 우리국회에 대한 참으로 귀중한 충고였고 이제라도 여야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할 의회주의의 경험칙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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