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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서울대 비판에 대한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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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요즘 강남 부동산 대책을 계기로 고교 평준화 등 우리 교육의 근본 틀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경제 정책 당국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강남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이 우수한 교육 여건이라며 일률적인 고교 평준화를 깨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교조 등 전통적인 교육공급자 집단은 진단 자체가 잘못 되었다며 반발하는 형국이다.

사실 이번 논쟁의 빌미는 강남 부동산 대책이 제공했지만, 근본적으로 두 집단의 교육의 목표에 대한 가치관이 판이하기 때문에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즉 교육의 경쟁 체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가장 큰 목표라고 생각하는 반면, 평준화 고수론자들은 그보다는 교육을 통한 사회적 형평성 달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 세계 34위 오른 科技논문 발표

이 두 집단은 대부분의 교육 문제에서 서로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예외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있다. 즉 서울대학교를 비판할 때다. 교육의 경쟁력을 중시하는 전자의 집단은 서울대가 세계적인 수준에 크게 미달하기 때문에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 육성에 실패하고 있다고 질타를 한다.

반면 후자의 집단은 서울대가 우리나라 교육의 최대 문제인 서열화의 정점에 서서 기득권을 확대 재생산할 뿐이라고 하면서 서울대를 폐교해야 한국 교육이 바로잡힐 것이라고까지 강변한다. 물론 이들의 비판대로 서울대가 세계 유수의 일류대학 반열에 끼지 못한 것은 사실이고, 가끔 서울대 구성원인 필자가 보기에도 꼴불견일 정도로 기득권을 휘두르는 일도 있지만, 과연 없어져야 마땅할 만큼 문제점 투성이인지 객관적으로 따져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우선 서울대가 세계 무대에서 어느 수준인지를 살펴보자. 사실 대학의 순위를 따지는 것은 평가 기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러나 정량적으로 나타나는 연구업적을 보면, 서울대의 최근 발전은 괄목할 만하다. 서울대는 5년 전만 해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과학기술분야 논문 발표 수가 세계 대학 중에서 1백위 밖이었는데, 지난해에는 34위까지 올라왔다.

한국의 간판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전자가 포천지의 글로벌 기업 랭킹에서 59위에 머무른 사실을 생각하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룩한 서울대의 이러한 업적은 자랑할 만하다. 또한 서울대보다 앞선 순위는 모두 미국.일본 등 선진 5개국의 대학들이 차지하고 있어 이제는 지식생산 면에서도 우리나라가 선진국과 경쟁할 수 있다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대가 기득권을 확대 재생산할 뿐이라는 비판도 한 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다. 오히려 과거 서울대 입학이 어려운 집안 출신 학생들의 신분상승을 위한 통로 역할을 했던 점을 무시하기 어렵다. 또한 전체적으로 서울대 졸업생이 사회의 기득권 계층에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득권에 저항하는 진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980년대까지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서 서울대 학생들은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고, 지금도 많은 졸업생이 각종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 사회 넓은 계층 포용에 주력을

사실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서울대의 과거는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자칫 잘못하면 과쪽이 강조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구성이 사회의 넓은 계층을 포용하지 못해 좁은 시각의 졸업생을 양산할 위험이 있고, 양(量)적 팽창만 추구하다 연구와 교육의 질(質)적 향상을 놓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다행히 서울대 내부에서도 이러한 위험에 대처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어제 서울대 교수협의회가 개최한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대토론회에서는 자기 성찰과 변화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많았고, 필자가 얼마 전 "남의 탓 하기 전에 서울대 구성원이 먼저 변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교내신문에 기고했을 때에도 비난보다는 격려의 말을 많이 들었다. 개혁이란 무조건 파괴를 의미하지 않는다. 있는 것을 잘 이용하는 것, 이것이 슬기로운 길이 아닐까.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