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지리' 파나마 … 베네수엘라·과테말라 다툼에 비상임이사국 횡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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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유엔을 무대로 펼쳐진 친미-반미 간 팽팽한 자존심 싸움이 결국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놓고 경쟁해 온 베네수엘라와 과테말라는 1일 막후 협상을 통해 양측이 동반 퇴진하는 대신 제3의 후보인 파나마를 공동 지지키로 합의했다. 양국은 지난 3주간 47차례의 표 대결을 벌였으나 결국 승부를 내지 못했다. '어부지리'를 얻은 파나마는 아르헨티나의 후임으로 중남미 몫의 유엔 이사국에 선출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번 혈전은 '반미 선봉장'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안보리 진출 의지를 보이면서 예견됐었다. 차베스는 국내에서 '퍼주기 외교'라는 비난까지 받으며 중남미와 아프리카에 집중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30개국을 방문하고 해외 원조금 13억 달러를 내놓은 것도 이사국 진출을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미국도 그냥 두고 보지 않았다. 미국에 우호적인 과테말라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차베스는 지난달 유엔 총회 연설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악마'에 비유하며 맹비난했다. 자연히 총회 투표는 차베스와 부시의 대리전으로 비화됐고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뚜껑을 열자 미국의 막강한 힘이 드러났다. 47차례의 표 대결에서 과테말라는 단 한 차례 무승부를 기록했을 뿐 베네수엘라에 25~30표 차로 줄곧 앞섰다. 하지만 차베스도 만만치 않았다. 이사국 진출에 필요한 회원국 3분의 2(120개국)의 지지를 내주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베네수엘라는 지난주 양국의 동반 퇴진을 제안했다. 그냥 물러서지는 않겠다는 '물귀신 작전'이었다. 과테말라는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교착 상태는 풀리지 않았고 칠레 등이 중재에 나선 끝에 이번 합의에 이르게 됐다.

대안으로 파나마가 선택된 것은 지정학적인 고려 때문이다. 당초 유력한 제3 후보는 도미니카공화국이었다. 헤르트 로센탈 과테말라 외무장관은 "파나마는 남미와 중미를 연결하는 나라여서 양쪽에서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조민근 기자

◆ 안보리 비상임이사국=모두 10개국으로 상임이사국 5개국과 함께 안보리의 주요 결정에 참여한다. 그러나 거부권은 없고 임기도 2년으로 제한된다. 지역에 따라 ▶아시아.아프리카 5석 ▶중남미 2석 ▶동유럽 1석 ▶서유럽 및 기타 2석이며 매년 절반씩 새로 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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