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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받던 국교생도 한때 고립/뜬눈으로 지샌 물난리 현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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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안부전화 일시에 몰려 불통도/한교실 150명대피… 수용소 방불/인근주민들 식수ㆍ옷가지등 전달/시외버스 끊겨 여행객들 발동동
졸지에 보금자리를 잃은 수재민들은 학교의 교실ㆍ복도에 마련된 임시수용소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이들에게는 구청과 적십자사 등에서 모포와 함께 우유ㆍ빵ㆍ라면 등이 전달됐으나 턱없이 모자랐다.
물에 잠긴 시가지는 밤이 되자 목만 내놓은 가로등과 간판불빛만 보여 유령의 도시처럼 을씨년스러웠다.
경찰은 주민들의 대피지역에 대한 경비를 강화,외부인들의 접근을 막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런 와중에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등 시민정신이 곳곳에서 발휘돼 한줄기 훈훈한 기운을 느낄수 있었다.
○…광명시 철산1,2동 5백13가구 주민 1천7백60여명이 수용돼있는 광명동국민학교의 경우 한 교실에 30가구 80여명이 들어가 피난민수용소와 같은 분위기.
이 때문에 각교실은 책걸상을 모두 복도로 끌어내고 시청에서 지급한 두께 5㎝의 스티로폴을 깔았지만 너무 비좁아 누워자기에도 큰 불편.
또 난지도수재민 3천6백여명이 긴급 대피해있는 서울 상암동 상암국교에는 20여평규모의 1개교실에 1백50여명이상씩 수용돼 복도에까지 책상 등을 붙여 잠자리를 마련하는 등 북새통.
그러나 서울에서 가장 먼저 침수피해를 본 수서­일원지구 비닐하우스 수재민들이 수용돼있는 일원동 중동고 강당에는 주변 우성7차아파트 주민들이 10일저녁부터 계속 보리차를 끓여 식수로 나누어 주는 한편 밥과 국을 준비해 강당으로 날라다주고 담요는 물론 옷가지들도 제공해 이웃사촌의 정을 나누기도.
○…서울 개봉국교생 1백여명은 11일오전 수업을 받다 갑자기 학교주위도로가 1m가량 침수되는 바람에 오전11시부터 학교로 대피하기 시작한 개봉동주민 7백여명과 함께 한동안 수재민생활.
어린이들이 학교에 고립돼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학부모 50여명은 이날 오후2시쯤 학교주위로 몰려가 자식들의 이름을 부르며 애를 태웠다.
경찰은 오후7시30분쯤 헬기 2대와 고무보트 20대를 동원,어린이들과 수해주민들의 구조작업을 펴 이중 어린이 60여명과 주민 2백40명 등 3백여명을 부근 광명교회ㆍ신도림국교ㆍ대일학원 등에 분산 수용했으며 대부분 어린이들은 부모를 만나 귀가.
○…이문3동 주민들은 11일오전부터 이 일대가 침수되자 이번 수해는 관할구청 등 관계기관의 허술한 수방대책이 부른 「천재 아닌 인재」라며 침수현장에 나와있던 구청장ㆍ동사무소직원들에게 격렬히 항의.
주민들은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던 11일 오전9시쯤 구청에서 양수기 2대가 도착했으나 양수기에 부착된 배수호스가 네군데나 파열돼 물이 성인 가슴높이까지 차오른 낮12시부터야 양수작업을 할수 있었다며 구청측의 수해장비 사전 정비소홀에 큰 불만.
○…성내천의 범람으로 서울 강동구청과 강동경찰서는 가슴높이까지 물이 차 민원업무가 완전 마비.
강동경찰서의 경우 2층에 임시보호실을 마련해 1층에 있는 유치장과 형사계보호대기자 20여명을 임시 수용했고 11일오후에는 형사계 이수돈순경(28)이 구속영장을 넣은 가방을 머리에 이고 물속을 헤엄쳐 동부지청에 이송하는 진풍경.
○…구로공단3단지 1백여업체는 11일 오전11시부터 단지내 도로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자 조업을 중단하고 근로자들을 서둘러 귀가시켰다.
이들 업체들은 지하실이 침수되는 바람에 작업을 할 수 있게 된데다 집걱정을 하는 근로자들이 많자 오후2∼3시쯤 회사별로 직원들을 모두 퇴근시켰다.
○…11일 오후4시부터 오후10시까지 6시간여동안 한국청소년탐험대 소속회원 강원규씨(33ㆍ서울 옥수동)는 고무모터보트 2대를 동원,동직원들과 함께 사근동 215일대 노인정에 갇혀있던 20여명의 노인을 비롯,50여명을 구조.
○…속초에서는 이날 속초∼서울,속초∼춘천을 운행하는 고속 및 시외버스가 운행구간에 발생한 산사태와 도로유실로 운행을 중단,2천여명의 발이 묶여 터미널부근 여관 등에 숙소를 잡으려는 사람들로 큰 혼잡.
영월지방의 경우 영월∼춘천,영월∼제천간 등 모든 도로가 막히고 철도까지 두절되자 5백여명의 승객들이 발을 동동 구르다 되돌아가는 소동.
○…서울ㆍ경기ㆍ강원지역 수해피해가 계속 늘어나면서 친척ㆍ친지들의 안부를 묻기위한 전화통화가 폭주,서울∼전주간 한통화를 하는데 30여분이 걸리기도.
특히 11일 오전11시쯤엔 서울∼전주간 시간당 통화량이 59만통화에 이르는 등 적정통화량 15만통화에 네배가량 웃돌자 서울 관문국인 혜화ㆍ구로 2개국에서 전주쪽 회선을 막아 12일 오전9시 현재 열리지 않고 있다.
○…12일새벽 고양군 지도읍 행주대교 부근 한강제방이 터지자 긴급 출동한 인근 군부대 병력이 제방복구작업에 나섰으나 물살이 거세고 제방이 계속 무너져 손을 쓰지 못하고 포기.
터진 둑으로 밀려들기 시작한 강물은 비교적 지대가 낮은 일산ㆍ원당지역을 순식간에 침수시켜 주민들은 잠결에 높은 지역으로 피신하느라 북새통을 이루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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