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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이라크 해법'에 속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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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미국이 '이라크 해법'을 찾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도 때도 없는 게릴라들의 공격이 수그러들 조짐이 없다. 유엔 결의안 통과를 계기로 파병 의사를 밝힌 국가들마저도 몸을 사리고 있다. 치안 유지를 위해 강력한 통제조치를 취하고 싶지만 현지인들의 반발이 두렵다. 경계를 늦추면 저항세력들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29일에도 바그다드 북쪽 발라드 인근에서 순찰 중이던 미군 M1에이브럼스 탱크가 지뢰로 파괴돼 탑승했던 병사 2명이 사망했다. 이날 바그다드 남부 수와이라 인근에선 순찰 중이던 다국적 '폴란드 사단' 소속 우크라이나 병사 7명이 이라크 저항 세력의 매복 공격을 받아 부상했다.

◇속 타는 부시=28일 새벽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보좌관들로부터 전날 바그다드의 연쇄 폭탄공격 사건을 보고받고 바로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4개월 만의 기자회견에서 그는 "테러범들이 자살 폭탄 공격으로 협박하지만 미국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준비된 문구를 단호한 표정으로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얼마의 병력이 더 필요하며 언제쯤이면 끝나느냐"는 질문이 쏟아지면서 그는 이내 '속 타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기자회견 직후 CNN방송은 "미국인들은 더 안전해졌다"는 그의 일부 발언을 발췌한 뒤, 이와 정반대되는 그동안의 여론조사 결과 (미국이 더 안전해졌다는 비율은 4월 58%에서 최근에는 45%로 떨어진 상태)를 하루 종일 내보냈다.

뉴욕 타임스도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유권자들을 달래기 위해 부시가 긴급히 나섰다'는 제목 아래 "이라크 문제가 이렇게 진행될 경우 부시는 '국민으로부터 전비(8백70억달러)를 쓴 결과를 보여달라'는 요구에 직면할 것이며 내년 대선에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언론들은 "최근의 테러 문제는 방글라데시.터키의 파병 문제를 주춤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사실상 게릴라전의 상태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앞으로 부시가 더욱 험난한 과정을 겪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딜레마=지난주 부시 대통령의 측근들은 바그다드 치안유지 정책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철저한 통제냐, 아니면 이라크인들에게 '열린 사회'를 느끼게 만드느냐는 문제였다. 부시의 한 측근은 "우리는 바그다드를 영원히 통제할 수 없음을 잘 안다. 그렇게 하더라도 그것은 피루스의 승리(막대한 희생을 치른 승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철저한 통제는 해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뉴욕 타임스는 28일 미국이 이라크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강경 수단을 자제하고 있으나 이 틈을 이용하는 저항세력들 때문에 딜레마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번 주 이슬람 금식월인 라마단이 시작돼 미군은 통상적인 순찰활동을 줄이고 기도시간에 사원 근처에도 가지 못하도록 지시했는데 이 '배려'가 저항 세력들에게 기회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당분간 이런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클린턴 시절 국방부 관리를 지낸 미셸 플로니는 "미국이 바그다드를 철저히 통제한다면 모든 바그다드 시민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박경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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