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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정부, 북한 짝사랑하다 '왕따 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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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국과 북한.중국의 3자회동이 열린 지난달 31일. 외교통상부의 6자회담 관련 부서는 오후 내내 허둥거렸다. 미.북.중이 오전부터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는 정황 외엔 구체적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부가 오후 7시 홈페이지에 3자회동에 대한 성명을 올린 뒤 외교부는 고위 당국자 인터뷰를 통해 "(3자회동을) 안 것은 오래전"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 반기문 장관이 중국을 갔을 때도 구체적인 협의는 없었다"며 3자회동에 대해 뒤늦게 알았다고 사실상 시인했다. 반 장관은 지난달 27~28일 중국을 방문했었다.

◆ 왕따 당한 노무현 정부의 외교=반 장관이 중국에 있던 27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중국에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를 베이징(北京)에 보내겠다"고 통보했다. 중국은 즉시 이를 평양에 알렸다.

하지만 중국은 차기 유엔 사무총장이자 한국 외교부 장관인 반 장관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미국도 지난달 25일 한국에 3자회동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 외에 구체적 정보를 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깜깜한 상황은 1일에야 풀렸다. 우리 외교부가 중국 측으로부터 3자회동 결과에 대해 통보받은 시각은 이날 오후 2시쯤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는 전 세계 언론 매체가 보도한 다음 날에야 겨우 전달받았다.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이 가시화된 것이다.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북한 핵실험 이후 긴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정세 속에서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라며 "우리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한국 외교의 현실"이라고 했다.

◆ 한국 러브콜 무시하는 북한=이렇듯 한국이 '왕따'를 당하는 상황에 처한 것은 한.미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데다 북한의 '남한 무시전략'에 아무런 변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은 대미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본격 참여를 거부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여전히 남한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이 극도의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북한이 요구한다는 이유로 북.미 양자회담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 외교전문가는 "한국을 인질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한 북한은 한국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은 채 협박을 일삼는 상황이 거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북한의 조평통과 아태평화위는 각각 "남조선 당국이 이성을 잃고 미국의 반공화국 제재.압살 책동에 가담한다면 해당한 조치를 취할 것(지난달 25일)", "금강산관광 변경 시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1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계기로 쌀.비료 지원 재개 여부를 논의키로 하는 등 북한에 대한 짝사랑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는 1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 정부는 6자회담 재개 등 상황을 봐가면서 쌀.비료 지원 재개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6자회담이 재개돼도 한국이 소외되는 외교적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철희.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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