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칼럼

중국의 '조련(調練)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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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국은 겉으로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속으로는 북한 달래기에 전력을 쏟았다.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특사로 워싱턴과 평양을 오가며 막후 중재를 맡았다.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와 북한의 김계관 외무성 부상을 비밀리에 베이징으로 불러들여 7시간 동안 담판을 갖도록 했고, 결국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이끌어냈다. 중국식 '조련외교'의 화려한 결실이다.

조련사에게는 엄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라는 '야누스의 얼굴'이 필요하다. 자식이 잘못했을 때 아버지가 회초리를 들어 따끔하게 야단치고 나면 어머니는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 그러면서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중국은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을 에너지와 교역.금융 카드로 혼을 내면서도 "우리는 북한 정권의 변화를 결코 바라지 않는다"고 누누이 강조했을 것이다.

변방 국가들을 달래고 때리면서 손안의 공깃돌처럼 다뤄온 중국의 제국적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다. 조공(朝貢)을 들고온 변방의 사신들에게 천자(天子)는 후한 선물을 들려 보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반역의 조짐이 보이면 가차없는 보복으로 응징했다. 여러 개의 공을 공중에 던져놓고 양손으로 주고받는 외교 솜씨가 서커스단 곡예사를 방불케 한다. 흔들리지 않는 북두성(北斗星)을 자처하며 중심에서 변방을 통할해온 것이 중국 외교다.

중국의 대북 외교가 당근과 채찍을 배합한 조련 외교라면 미국의 대북 외교는 채찍에 주로 의존하는 강압 외교다. 힘에 바탕을 둔 '하드 디플로머시(hard diplomacy)'고 일방주의 외교다.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상대의 반감과 반발을 유발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효과가 덜할 수 있다. 외교에 관한 한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한 수 배울 게 있다.

한국의 대북 외교는 어르고 달래기만 하는 '당근 외교'고 '퍼주기 외교'다. 단호해야 할 때 단호할 줄 모른다. 당근도 계속 주다 보면 안 주는 것이 되레 이상해진다. 무기력하고, 한 박자 늦고, 쫓아가기에 급급하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하다 보니 말발이 서질 않고, 이리저리 차이는 동네북 신세가 된다. 베이징의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중국이 노련한 외교술을 뽐내는 동안 한국은 그런 일이 있는 줄조차 몰랐다.

반기문 장관을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외교통상부 직원들이 발이 닳도록 뛰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결국 꿈은 이루어졌다. 그 자체로 대단한 위업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자기네 조직을 위한 '밥그릇 외교'요, 외교라기보다는 '내교(內交)'에 가깝다. 외교부 직원들이 반 장관 유엔 사무총장 만들기에 쏟은 열정의 절반만이라도 제대로 된 외교에 쏟았던들 북핵 외교의 현실이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로 함으로써 일단 말을 물가까지는 끌고 왔다. 하지만 말에게 물을 먹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언제 다시 들판으로 뛰쳐나가 어떤 말썽을 부릴지 알 수 없다. 진짜 중요한 외교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북핵 외교게임을 지휘할 외교장관에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는 인물이 내정됐다. 북한을 길들이려면 당근도 필요하지만 필요할 때 채찍을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코드 맞추기에 급급하다 보면 과연 그럴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부터라도 정신 차려서 주고도 욕먹는 '등신 외교', 혼자만 바보되는 '왕따 외교'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