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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곡 가톨릭피부과 원장 엠마 원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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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벽안의 처녀할머니를 주위사람들은 「한국의 테레사」 혹은 「백의의 성녀」라 부른다.
대구시 읍내동l140 칠곡 가톨릭피부과의원 원장 엠마 프라이징거 여사(58).
그러나 자신은 이 나라 6만여명의 나환자들이 부르는 「엠마」라는 애칭을 더 좋아한다.
나환자 구료기관으론 최초로 설립된 칠곡 가톨릭피부과의원에서 그녀의 손길을 거친 나환자는 연 99만6천여명에 이른다.
다소곳한 미모의 소유자 엠마 여사가 우리 나라에 온 것은 29년 전인 61년4월.
여사의 58년 생애에서 꼭 반생을 우리 나라 나환자 치료에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여사는 고국 오스트리아의 살즈버그 간호대 간호학과를 나와 살즈버그 도립병원 외과간호사로 있다가 당시 가톨릭 대구대교구장이던 서정길 대주교의 초청으로 우리 나라에 온 것이 나환자들과 인연을 맺게된 계기다.

<오스트리아가 고향>
『나환자는 진료만 해서도 안 됩니다. 항상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관심을 기울여야 치료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우선 환자들이 일정한 곳에 정착할 수 있도록 경북 의성과 고령 등지에 각각 신락원·은양원 등 정착촌을 마련, 당시 유랑과 구걸로 살아나가던 나환자들을 모아 침식을 함께 하며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인근 주민들의 냉대를 피해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나환자들도 많아 진료가방을 들고 일일이 찾아다니느라 발이 부르터 걸음을 걸을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나환자들을 보살피고 부자유스러운 그들을 대신해 빨래도 해 주 고 밥도 지어주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환자의 육체적 질병과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는데는 한 알의 약보다 하느님의 사랑과 봉사가 더욱 중요합니다.』
지극히 소박하고 가식 없는 태도가 민망스러울 정도로 여사는 자신의 조그만 소망을 받아준 한국과 한 국민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까지 살아왔노라고 말한다.
평범한 가정주부가 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가면서 이따금 걱정해주는 주위사람들에게 『나의 배우자는 나와 함께 생활하는 환자들』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엠마 여사.
가톨릭 피부과의원이 개설되고 그녀가 본격적인 나환자구료 활동에 나선 것은 63년l월 총무처에 외국원조단체 등록을 마치면서부터.
엠마 여사가 61년 처음 우리 나라에 왔을 때 피폐해진 실정을 둘러보고는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에 재정지원을 호소, 대지 2천2백50평에 병실 3동과 기숙사 등을 마련하게됐던 것.

<돌팔매에도 꿋꿋>
그리나 인근주민들로부터 「문둥이대장」으로 몰려 돌팔매질을 당하는 등 격렬한 항의에 부닥쳐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다.
『처음엔 병원공사를 마무리짓고 한 2년만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그 동안 정든 환자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가슴아팠고 그들의 참담한 실상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여사는 이것 또한 하느님의 뜻으로 여기고 오스트리아로 돌아가는 것을 아예 포기했다. 그 동안 자신의 고국인 오스트리아와 서독 구라협회 등 외국원조단체로부터 지원 받은 재정규모는 줄잡아 37억원.

<연99만여명 진료>
이 돈으로 1백 베드의 병상확충과 경남 산청에도 장기수용환자 전문의료기관을 설립, 운영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진료한 환자는 모두 99만6천여명.
6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전국의 나환자들이 평균 l5차례이상 그녀의 손길을 거쳐간 셈이다.
물질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가족 3백92가구에는 영농·영어자금과 생업자금 3억8천4백만원을 지원, 자활기반을 마련해주었고 3억여원의 장학금을 지급해 중학생 l천4백3l명, 고교생 l천33명, 대학생 38명, 기술교육생 28명 등 2천5백30명의 환자 자녀들에 대한 장학사업도 벌였다.
여사의 노력으로 70년1월엔 국내에서도 가톨릭 신자들이 앞장서 구라후원회 「릴리회」를 발족, 외국원조단체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나병퇴치를 위한 우리 국민들의 나눔도 전국으로 확산되게 됐다.
「릴리회」의 구라운동은 20년이 지난 지금 종교단체는 물론, 금융계·교육계·의료기관· 일반인등 회원수가 6천3백51개 단체를 비롯해 개인 1만4천6백78명, 외국인 1천7백21명 등에 이르고 있다.
이들이 내는 성금은 「차 한잔, 빵 한 조각」아낀 월1천원 안팎. 간혹 거액의 성금을 기탁하는 경우도 있으나 나환자를 돕고 있다는 뜻이 중요할 뿐이 운동을 결코 자랑하거나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있다.

<"긍지와 보람 느껴">
「릴리회」는 발족당시부터 엠마 프라이징거원장을 회장으로 추대, 회비의 사용 일체를 그녀에게 위임하고 회원들은 스스로매월 성의껏 회비(성금)를 보낸다. 모금된 회비는 연간 l억6천만원선.
성금은 나환자들의 의·수족과 미모(눈썹)이식, 정형수술, 눈수술 등 치료비에 충당하고 있다.
『따뜻한 한 국민들의 손길이 이제 나환자에게도 미치게 됐다는 사실에 긍지와 보람을 느낍니다.』
엠마 여사는 「릴리회」가 민간 구라사업 지원단체로 그 기능이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고 말한다.
『나는 한국나환자들을 의해 태어났으므로 죽을 때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다 이 곳에 묻혀 영원히 그들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병원기숙사의 조그만 방 한 칸에서 환자들과 침식을 함께 하며 나병퇴치에 온 힘을 쏟고 있는 엠마 여사의 품안에서 이 땅의 나환자들은 비로소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글 김영수·사진 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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