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도 박쥐는 공중을 날아다니는 먹이를 놓치는 법이 없다. 초음파를 보내 되돌아오는 신호를 이용해 곤충의 위치를 파악하고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잡아챈다. 박쥐가 갖고 있는 기이한 능력 중 하나다.
육식성 박쥐가 초음파로 먹고 산다면 식물을 먹고 사는 박쥐는 어떻게 연명할까. 하늘거리는 식물을 자신의 먹이로 인식하는데 초음파로는 부족할 것이란 호기심이 과학자들을 자극했다. 시각기관은 미미하게 존재하지만 그 기능이 어디까지인지도 이들의 관심사였다.
아마존 일대에서 보라색 열매를 먹고 사는 창코박쥐류에서 그 비밀이 밝혀졌다. 독일 뮌헨대 요크 빈터 박사팀은 '네이처' 최근호에 박쥐가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는 포유류는 쥐를 포함한 설치류 등 극소수 종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됐다.
빈터 박사팀은 창코박쥐류에 다양한 영역의 빛을 쪼여 어느 영역에서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알아봤다. 실제 이들 박쥐가 즐겨먹는 보라색 열매는 자외선을 발산하고 있어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는 감각기관이 따로 있을 것으로 가정했다.
여러가지 빛의 영역 중에 역시 자외선과 녹색 영역에서 가장 높은 반응을 보였다. 더 나아가 박쥐가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지 알아본 결과 박쥐는 색맹으로 밝혀졌다. 결국 하나의 감각기관이 자외선부터 가시광선 영역을 동시에 인지한다는 것이다.
빈터 박사는 논문을 통해 "자외선 영역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된 야행성 소형 동물의 경우 자외선에 반응하는 별도의 감각기관을 갖고 있어 이번 박쥐의 감각기관과 차이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박쥐는 해가 뜰 무렵과 해가 질 무렵 보라색 열매를 찾아다닐 것으로 여겨진다. 이 때가 자외선 방출이 가장 강한 시간대로, 가시광선의 방해를 적게 받으면서 보라색 열매를 찾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외선 영역을 보려면 특수한 장비를 이용해야 한다.
심재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