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식량난 대단치 않다”/진세근특파원,이라크정부대변인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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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란전 경험살려 어려움극복/다국적군 철수 먼저… 양보는 매국”
『미국이 앞장서 유엔이 결의한 경제제재조치에도 불구,이라크내의 식량문제는 외신들의 보도만큼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이라크내에 있는 외국인들은 적잖은 고통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이라크의 유일한 영자지 바그다드 업저버의 편집국장이자 이라크정부대변인인 나지 알하디티씨(51)와의 회견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면담신청으로부터 꼬박 3일이 걸렸다.
쏟아지는 정부발표문을 손질하랴,그리고 신문제작에 시간을 할애해야하랴 몸빼기가 힘든 하디티씨와의 면담은 마치 후세인 대통령을 인터뷰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웠다.
이라크인 특유의 흰머리에 금테안경,흰바지와 분홍색 와이셔츠차림의 말쑥한 호남형인 하디티씨는 목전의 이라크사태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미국의 경제봉쇄조치가 이라크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정도인가.
『결코 심각하지 않다. 약간의 타격은 있지만 8년동안 이란과의 전쟁을 치른 경험있는 이라크국민들은 이번 어려움을 어렵지 않게 극복하고 있다.
더구나 그동안 많은 식량을 비축해 두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장기간 버틸 수 있다. 오히려 식량을 제대로 수출하지 못하는 미국 농민들의 고통이 클 것 같아 걱정이다.』
­그래도 현재 바그다드시내에서는 설탕ㆍ쌀ㆍ계란등의 주요생필품 공급이 부족하지 않은가.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 대단치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라크인들은 절대로 굶지 않는다. 다만 외국인들이 다소 고통을 겪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이 선제공격해올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국이 공격하면 우리도 미국을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시체의 산」을 보기로 각오하지 않으면 감히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미국이 바그다드를 융단 폭격한다면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마구 해친 「악마제국」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라크군이 점령중인 쿠웨이트에서 철수할 용의는 없는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철수하라고 하는 것은 마치 캘리포니아에서 미군을 철수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 중동사태의 유일한 해결책은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이 하루 빨리 중동에서 철수하는 길뿐이다.
우리에게 양보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달라. 어떻게 자국영토에서 물러나는 것을 양보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굴욕이고 매국과 같은 것이다.』
­최근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때 서울에서 받았던 인상은.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직전인 7월27일 서울을 방문,9일간 머물다 요르단을 거쳐 이라크로 돌아왔다.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외무부 관리ㆍ언론인등 각계각층의 인사들과 접촉을 가졌다. 한국은 민주화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큰 진통을 겪고 있는 나라이지만 매우 안정되고 풍요로운 국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의 압력에서 벗어나 홀로 설 수 있는 민족적 자존심을 키워 나가야 한다.』<알 하디티 이라크정부 대변인>
◎교민안전보호에 최선… 피해없어 다행/쿠웨이트공관 유지 이라크선 못마땅
『어떻게 1천여명이나 되는 대식구들이 무사히 바그다드를 거쳐 요르단으로 빠져 나갈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기분입니다. 오직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교민들을 수송하느라 지난 한달동안 밤잠을 설치면서 교민철수작전을 진두지휘했던 최봉름 주이라크대사(56)는 매우 피곤하고 지친 모습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사탈출도 문제였지만 이라크군인들의 수색으로부터 교민들의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큰 일이었습니다.
궁리끝에 국경통과 특권을 갖고 있는 팔레스타인 자가용 운전수를 고용,교민들의 안내를 맡게 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검색을 간단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다른 나라 교민들이 적지않은 피해를 당한 반면 우리교민들은 거의 피해를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슬아슬한 일도 많았죠.
『쿠웨이트 대사관직원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철수할 땐 정말 그랬어요. 너무 지친 나머지 아침에 출발하지 못하고 오후 6시에 출발했는데 이들이 막 국경을 넘을 시각쯤에 요르단 국경이 폐쇄됐다는 소식이 라디오에서 들리지 않겠습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밤잠을 못이루고 기다리다가 다음날 오후에 안내인이 돌아와 그들이 무사히 국경을 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10년은 감수한 기분이더군요.』
­현지 대사로서 현재 가장 곤란한 일은 무엇입니까.
『유엔결의에 동참,쿠웨이트대사관을 그대로 두고 있지만 소병용대사를 비롯한 공관 직원 5명은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속에서 전기와 물도 충분치 않아 큰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일본도 대사관을 철수했는데 한국은 왜 대사관을 그대로 두고 있느냐」고 이라크관리가 질책할 때는 혹시 이곳에 남아 있는 한국인 근로자들에게 나쁜 영향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최봉름 주이라크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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