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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표류하는 비정규직 법안 해법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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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첫 월례 갈등 조정 포럼에서는 비정규직 법안을 다뤘다. 이 법안은 비정규직 근로자 550만 명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으나 2년째 표류하고 있다. 비정규직 법안의 해법을 찾기 위해 전문가 6명이 머리를 맞댔다. 여기서 ▶비정규직 차별 금지▶차별에 대한 시정절차 간소화▶기간제 근로자 사용사유 제한▶포지티브 방식인 파견근로제 개선 등 주제가 다뤄졌다. 사용자를 대표한 패널들은 비정규직에 대한 지나친 보호가 기업의 경영활동과 인사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반면 노동계를 대표한 인사들은 현 상황에서 법안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에 대한 강력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지난달 27일 열린 제1회 월례 갈등 조정 포럼의 모습. 왼쪽부터 최재황 한국경총 본부장, 박성준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인곤 노동부 비정규직 대책팀장, 박진 KDI 교수, 김재훈 서강대 법대 교수, 남우근 비정규직노동센터 사무국장, 홍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실장.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법안에 명시해야 하나

'동일 노동이 동일 가치를 창출하느냐'가 토론의 화두였다. 박성준 선임연구위원은 "이는 마르크스적 가치 기준이며 시장경제 체제에선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재황 본부장도 거들었다. "동일 노동이 반드시 동일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다. 형태만 같다고 해서 동일 임금을 주는 것은 잘못"이라는 논리를 폈다. 김재훈 교수는 일본에도 이런 제도가 없다고 했다. 또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법안에 명시할 경우 법원은 이를 근거로 한 판결을 내릴 가능성이 커 사용자의 의견과 큰 차이를 보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찮았다. 남우근 사무국장은 "법의 실효성을 먼저 따져야 한다"며 "법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 문구를 법안에 반드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측은 이견 차를 좀처럼 좁힐 수 없었다.

하지만 패널들은 법안의 취지를 현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함께했다. 결국 패널들은 비정규직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막기 위해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문구를 반드시 명시할 필요는 없다는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불합리한 차별을 막을 수 있는 행정지도 등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 밖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의 문제점도 거론됐다."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인재 활용이 객과적이기보다 주관적이기 쉽다."(김 교수), "인사관리에서 근로자의 입장은 배제돼 있다. 경영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좌우되기 쉽다."(홍주환 연구실장) 등이었다.

◆차별 시정절차의 개선이 필요한가

현재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불이익을 당한 근로자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고 이에 불복할 경우에는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할 수 있다. 중노위의 판정에도 이의가 있을 때는 정식 재판절차에 들어간다. 다수의 패널들은 "이는 실제 5심제에 해당하는 것으로 절차의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 측 패널인 김인곤 팀장은 반대 의견을 냈다. 그는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지만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전혀 비용을 들지 않는 합리적인 방법이다"며 "또 대부분의 구제신청이 법원에 가기 전에 해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부당노동 행위를 시정하지 않을 때는 1억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노사가 대립할 경우에는 대법원까지 가는 경우가 많으며 소송을 제기할 경우에는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추가 비용도 들어간다"고 반박했다. 그는 지방노동위의 상담업무를 강화해 행정지도를 통해 이를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남 사무국장은 "대법원의 최종 판결까지는 3~4년이 걸린다. 차별을 바로 시정할 수 있는 긴급이행 명령 제도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기간제 근로자 재직기간이 2년인데 차별을 바로잡는데 2년 이상이 걸린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참석자들은 현 제도가 잘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3~4년씩 걸리는 사안에 대해서는 처벌규정 등 보완조치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다.

◆기간제 근로자 고용사유 법안에 명시해야 하나

노동계와 다른 분야 패널들의 의견이 갈렸다. 노동계 출신 패널들은 이를 법안에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연구실장은 "이 법안의 취지는 기간제 근로자가 지나치게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기간제 근로자로 고용할 수 없는 경우를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팀장은 이럴 경우 오히려 노동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일부 근로자만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대다수는 해고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패널들도 기간제 근로자들 실직에 대한 우려가 컸다. "기간제 근로자 상당수가 해고당할 수 있다."(김 교수)

최 본부장은 "기업이 현 상황에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검증된 사람을 고용하려고 한다"며 "이 규정을 둔다면 아예 검증 단계인 경력을 쌓을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기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고용 사유 제한 규정이 도입된다면 '고용을 줄이겠다'는 답변이 50%에 달한다고 소개했다. 남 사무국장은 "현 법안으로는 기간제 근로자의 남용을 전혀 막을 수 없어 고용 사유 제한 규정이 필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들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결국 이 문제는 추가적인 조치 없이 고용 사유 제한을 법으로 규정한다면 노동시장에 단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한편 일부 패널은 법 실행에 유예기간을 두자는 의견을 냈다.

◆파견근로 직종의 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해야 하나

노동계를 대변한 패널들은 파견근로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 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네거티브 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파견근로자를 제한하는 효과가 있는 포지티브 방식마저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패널은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체 근로자 수를 늘리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남 사무국장은 "파견근로제를 인정하더라도 현 포지티브 방식에는 문제가 많다"며 "근로자가 갖고 있는 지식.기술 등 전문성을 근거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불이익을 당할 위험이 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 본부장은 "파견제는 총근로자의 수가 증가하는 효과 외에도 기업 입장에서는 고용의 유연성을 확대할 수 있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연구실장은 "해고의 자유를 달라는 직설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다"며 "해고를 위해 파견제를 악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맞받았다. 장시간 격론을 벌였지만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불법 파견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엄격히 하면서 파견근로제를 개선할 수 있도록 검토해야 한다는 선에서 결론을 맺었다.

한편 김 팀장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 법안은 노사정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며 "향후 시행하면서 단계적으로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최익재 기자 <ijchoi@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포럼 토론 방식은

주장 편 뒤 상대논리 공격

살아남은 의견 묶어 결론

KDI 국제정책대학원은 중앙일보와 공동으로 매월 한 차례 갈등 조정 포럼을 개최한다. 본 포럼은 한.미 FTA, 전시작전통제권, 비정규직 문제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공갈등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전문가 집단들에 어떤 역할이 기대되는지를 모색하기 위해 기획됐다.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논리적 토론으로 사실을 확인하고 이견을 좁힌 후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협상을 통해 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논리적 토론으로 이견을 좁히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주요 사회적 현안에 대해 전문가들마저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혼란스럽다. 이것은 전문가 집단의 위기다.

본 토론회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알리고자 한다. "쟁점 1은 논리적으로 A의 입장이 맞다. 쟁점 2는 이해관계의 차이에 기인하고 있어 논리적 해결은 어려우나 국가 전체로 볼 때 대안별로 이러이러한 차이를 가진다."

전문가들이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거나 이해관계자들에게 포획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토론회만 보아도 참석자들간 주장만 난무할 뿐 합의 형성을 위한 노력은 없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본 갈등 조정 포럼은 새로운 토론방식을 도입했다. 다양한 쟁점마다 자신의 주장을 피력한 후 서로 상대의 논리를 공격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유효타를 맞아 무력화된 의견은 버리고 상대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의견들을 묶어 합의를 도출하는 방식이다. 금번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갈등 조정 포럼에서 패널들은 세부 쟁점마다 합의에 이를 때까지 외나무 다리에서 논리 공방을 펼쳤다. 그 결과 몇 가지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박진 KDI대학원 갈등조정협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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