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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7가] 메이저리그의 처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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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수들과 비교해도 A급 대우로 손색이 없습니다. 2003년부터 풀타임으로 나선 서재응은 통산 107경기서 92경기에 선발 등판해 25승36패 방어율 4.27을 기록 중입니다. 오클랜드의 우완 리치 하든이 경력이 아주 비슷한데 2003년 데뷔해서 2005년까지 68경기서 26승16패 3.60을 기록한 뒤 올시즌 125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물론 하든은 연봉 조정신청 자격을 갖지 않고도 1년 먼저 백만장자가 됐습니다.

하지만 성적에 따른 연봉 증가세만 본다면 서재응이 오히려 차세대 영건 에이스로 촉망받는 하든을 앞지릅니다. 그는 2004년과 2005년 2년 연속 두자리 승수를 올린 반면 서재응은 한번도 10승을 올리지 못하고 올시즌 3승12패 5.33의 초라한 성적을 낸 다음이었습니다.

서재응의 대박은 오클랜드엔 저비용 고효율의 '머니 볼' 창시자 빌리 빈이 버티고 있고 탬파베이에는 그만 못한 단장이 있기 때문일까요?

10여년 전 한국에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최진실이 삼성전자의 냉장고 광고에 나와 깜찍한 표정으로 읊은 카피였습니다. 맞벌이 부부생활에서 아내의 처세학을 콕 찌른 이 말은 많은 여인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매출 증가는 물론 최진실이 '찌라시' 광고 모델에서 신데렐라로 탄생하는 아주 보기드문 계기가 됐습니다.

서재응은 뉴욕 메츠 때부터 '나이스 가이'로 불리웠습니다. 매스컴에 까다롭지않게군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별명을 붙여준 한국 특파원들에 따르면 팀에서도 그런 평판을 충분히 듣고도 남을만 했답니다. 호투하고도 타선이 안터져 억울하게 진 날도 결코 남 탓을 하지 않고 꾀병은 커녕 몸이 좀 안좋더라도 팀이 필요로 하면 언제든 등판을 강행했습니다. 릭 피터슨 투수코치와 불협화음이 조금 있었지만 현장은 물론 구단 관계자들에게 늘 웃는 낯이었다고 합니다.

가세가 기운 탬파베이에 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6월28일 다저스서 트레이드되자마자 바로 불펜으로 등판하고 이틀 후부터 선발로 나섰습니다. 16차례 등판에서 절반인 8번의 퀄리티스타트를 하고도 고작 1승밖에 못올렸지만 찌푸린 적이 없었습니다. 투수 코치의 무리한 투구폼 변경으로 부상자 명단에 오르기도 했지만 불평하지 않고 착실히 재활해 예정대로 복귀했습 니다.

경기 중 교체하러 올라온 감독에게 두 손을 모아 더 던지게 해달라고 밉지않게 간청하는 터프한 근성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조 메이든 감독은 "항상 신뢰가 가는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메이저리그를 포함한 미국 스포츠에서 멘탈의 태엽이 풀려버린 선수들의 모습은 매일 빠짐없이 지면을 장식하는 그들의 이기적인 행태 각종 사건.사고-약물은 양반이고 마약 성폭행 음주운전 등-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마치 60~70년대 한국에서 빈번했던 연탄가스 중독 사망 기사를 보듯합니다. 그렇기에 한국에선 최고 연봉 선수로서 당연하고도 남았을 박찬호의 수술 후 복귀가 이 곳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 다른 인종 선수들이 갖지못한 치열한 멘탈리즘의 처세 기량과 함께 한국 선수들의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확실한 '자기 마케팅'입니다.

미주중앙일보 구자겸 스포츠팀장
신문발행일 :2006. 10. 24 / 수정시간 :2006. 10. 23 21: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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