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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털어 외딴섬 불우청소년 도와/말단공무원 「숨은선행」 13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부산북구청 주사보 이호승씨의 참사랑/월급 48만원서 15만원씩 떼내/백20명에 장학금 대주고 격려/어려운 사정알면 찾아 나서/6백여통 감사 편지에 보람
『이호승아저씨! 숱한 태풍 등에 시달려온 욕지 주민들은 쓰러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섭니다…(중략)…수많은 좌절과 절망속에서도 선생님의 도움과 격려덕분에 희망을 안고 이 욕지를 바라보며 내일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욕지에서 김철우.』
현재 진주 대아고1년생인 김철우군이 지난해 12월 이 사은의 편지를 올린 「이호승아저씨」는 부산시 북구청 토지관리과 주사보 이호승씨(46).
이씨는 지난 13년동안 말단공무원의 박봉을 쪼개 남해 외딴섬 욕지도(경남 통영군)와 고아원의 불우청소년 1백20여명에게 장학금을 지급,나눔의 사랑을 몸소 실천해왔다.
부패한 공직자가 사정의 칼날에 여지없이 잘려나가는 현실이기에 이씨의 13년 나눔의 사랑은 더한층 빛나보인다.
김군은 이씨의 도움으로 욕지중학교를 졸업하고 진주로 진학한 것.
이씨의 장학금 지급은 우연한 기회에 욕지도 주민을 만나 낙도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된 77년부터.
욕지도는 충무에서 뱃길 2시간의 낙도인데다 특히 뱃길에 실종된 선원들이 많은 탓에 고아학생이 상당수였다.
이씨는 이때부터 매달 격려편지와 함께 당시 서기보의 쥐꼬리만한 월급봉투에서 2만,3만원씩 떼내 욕지중학교에 보냈다.
이씨는 이와함께 부산시내 고아원 방문은 물론 신문 등에 불우청소년에 대한 기사가 나면 직접 찾아 나서거나 격려금을 보내는 것도 잊지않았다.
87년부터는 아예 욕지중학생 3명,고아원인 부산시 화명동 평화의 집ㆍ성광원에서 각 1명씩 모두 중학교 3년생 5명을 추천받아 1인당 3만원씩 매달 15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해주고 있다.
『욕지중학교 등에 보낼 장학금이 하루라도 늦으면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의 순진한 얼굴들이 아른거려 매달 20일 봉급날이면 제일 먼저 돈을 떼내 등기로 부쳐줍니다.』
지금까지 이씨의 도움을 받은 학생은 이처럼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받은 40여명을 포함,줄잡아 1백20여명.
이들은 대부분 고아출신들이어서 4년제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없지만 중학교나 고교를 마친후 회사ㆍ공장 등에 취직해 이씨의 정성에 보답하고 있다.
이밖에도 양로원ㆍ불우이웃들과도 사랑의 나눔을 계속,이씨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은 모두 6백1명에 이른다.
『말단 공무원으로 남을 돕는다는 것은 쉽게 엄두를 못낼 일이지만 돈이 많을 때보다 적은 돈이라도 남을 도울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한층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씨의 현재 한달 봉급은 수당까지 모두 합쳐야 48만원정도. 이중 15만원을 떼낸다는 것은 보통사람으로선 어려운 결단이 필요하다.
경남 협천이 고향인 이씨는 중학3년때 일가친척 한명없는 부산에 와 찹쌀떡장사ㆍ신문배달 등 온갖 고생을 해가며 고교를 마친후 76년 5급공무원으로 공직에 뛰어들었다.
『가난때문에 배움의 길에서 탈락하는 일은 없어야죠.』
이씨는 한푼이라고 더 아껴 장학금에 보태기 위해 77년부터 아예 술ㆍ담배까지 끊어버렸다.
이씨가 13년동안 「왼손도 모르게」 베풀어온 나눔의 사랑이 세상에 알려지게된 것은 욕지중학교측이 지난달 30일 이씨의 선행을 중앙일보에 알려왔기때문.
자신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 한사코 기자의 인터뷰를 거절한 이씨는 『그동안 6백여통에 이르는 감사의 편지를 받고 읽는 보람으로 작은 도움을 베풀면서 산다』고 활짝 웃는다.<부산=정용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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