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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논의하나(남북 총리회담: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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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45년 쌓인 현안 다짚기엔 무리/남 교류­북 정치주력/군축ㆍ유엔가입 쟁점/결실보다 통로 유지에 초점
사흘 앞으로 다가온 남북 고위급회담은 분단 45년 만에 남북한 총리가 공식적으로 맞대면을 함으로써 쌍방의 정치적 실체를 인정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번 회담의 급이 높아졌다해서 단숨에 남북관계의 질적 변화까지 기대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우선 물리적으로 토의시간이 크게 부족하다.
남북한 총리는 5일 오전 인사말과 기조연설을 하는 것으로 1차회의를 끝내게 되며 6일 오전에는 이를 토대로 비공개로 대체토론을 갖게 된다. 기껏 4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내에 그 많은 중대현안들을 다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번 회담은 쌍방의 대체적인 입장을 확인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상견례 내지 탐색전 수준에 머물 공산이 크다.
단순하면서도 포괄적인 의제에서도 회담의 어려움은 감지된다.
「남북간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실현문제」라는 단일의제를 놓고 남북당국이 얼마만큼 운영의 묘를 살려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구체성이 없어 양측 모두 자신들의 입장만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이러한 점을 감안,의제선정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데 5일 강영훈총리의 기조연설에서 대체적인 윤곽을 짚고 6일 회의에서 쌍방의 합의점을 도출,필요할 경우 부문별 회의를 열고 그것이 안되더라도 평양의 2차회담으로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이에따라 새로운 제안을 내놓기 보다는 6공의 대북제안중 실현가능성이 크고 북한측을 자극하거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의제를 최종 손질하고 있다.
의제는 현재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 부문에서 군축과 유엔가입문제가,「다각적인 남북 교류협력 실현」부문에서 경제협력및 인적ㆍ물적 교류문제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군축문제는 북한이 우리측의 고위당국자회담 제의에 고위급 정치ㆍ군사회담 제의로 맞받아치면서부터 집착해온 분야로 격렬한 공방전이 예상되는 중심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7월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남북한과 미국의 3자 군축학술회의에서도 드러났듯이 우리측은 「정치적 신뢰구축→군사적 신뢰구축→군비감축」의 3단계 군축안을 제시할 것이고 북한측은 직접적인 군축을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
다만 북한측이 지난 5월31일 정무원ㆍ최고인민회의ㆍ중앙인민회의 합동명의로 제의해온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고위군사당국자간 직통전화 설치 ▲대규모군사훈련의 사전통보 등은 우리측 주장과 상당히 근접해 있어 합의가능성을 점쳐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와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거론하고 나설 경우 군축논의 자체가 벽에 부닥칠 소지가 크다.
우리측은 정치적 신뢰구축 방안으로 ▲상호비방 중지 ▲테러및 전복기도 포기 ▲서울과 평양에 상호 상주대표부 설치 등을 제안하고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 설치 ▲무력불사용및 불가침협정 체결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등을 제시할 방침이다.
북한이 이번 고위급회담에 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유엔가입문제.
북방외교로 한소,한중관계가 개선되면서 남한만의 유엔단독가입 가능성이 높아지자 지난 5월24일 김일성이 「단일의석공동가입」을 주장하고 나온 것이 북한의 위기감을 입증한다.
남한만의 유엔가입은 북한의 「두개조선 영구화」 논리가 국제사회에서 정면 부정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 북측 대표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오는 백남준예비회담단장이 지난 7월26일 마지막 에비회담에서 유엔가입문제를 최우선의제로 채택하자고 주장한 것만 봐도 북한측이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할 것은 분명해진다.
북한측이 정치ㆍ군사문제에 중점을 두는 데 반해 우리측은 교류협력부문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우리측은 특히 경제교류의 법적ㆍ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통행ㆍ통신ㆍ통상 등 3통협정의 체결을 제의할 방침이다.
또 지난 85년 중단됐던 남북 경제회담의 합의사항을 바탕으로 부총리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 경제협력공동위원회 설치를 제안하고 남북한의 상호보완차원에서 직교역방안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러나 북한을 자극할 우려가 있는 대북한 자금ㆍ물자공여 등은 거론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남북한의 제3국 공동진출 또는 합작투자등은 고위급회담의 진전상황을 보아가며 분야별 회담에서나 거론할 것으로 예상된다.
60세이상 노인의 상호방문과 설ㆍ추석ㆍ한식 등 명절때의 민족대교류,이산가족방문 등 인적 교류문제는 당연히 제기할 문제이지만 북한의 입장을 고려,지나치게 몰아붙이지는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우리측은 이번 회담의 의제는 반드시 어느 한쪽으로 한정해 성과를 내기 위해 몰아가기 보다는 당국간 고위급회담을 계속 유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 오히려 회담 그 자체가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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