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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는 피 말리는 M&A … 소비자들은 신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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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근교의 한 월마트에서는 스프린트 망을 빌려 쓰는 버진모바일이 10달러 통화권을 얹어주며 9.99달러에 단말기를 팔고 있었다. 그 옆의 미 최대 전자제품 양판점 체인 베스트바이를 들렀더니 싱귤러 2년 가입 조건을 단 모토로라 단말기(레이저)에 39.99달러(3만7000여원)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LG전자의 정보통신 북미사업부장인 조진호 부사장은 "미국 이통 시장은 보조금이나 요금제, 시장점유율 같은 규제가 없고 지난해부터 번호이동성 제도까지 도입해 무한경쟁체제"라고 말했다.

통신업체만 이런 게 아니다. 타임워너케이블은 케이블TV와 초고속인터넷, 인터넷 전화(VoIP)를 묶어 파는 '트리플 플레이 서비스(TPS)'를 제공한다. 요금은 미 동부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경우 월 120달러다. 전화회사였던 AT&T는 미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유선전화에 초고속인터넷.위성 TV(야후).이동통신(싱귤러) 네 가지 통신.방송 서비스를 한꺼번에 제공하는 '쿼드 팩' 상품을 월 132달러에 내놨다. 따로 가입하면 기본요금만 총 200달러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30% 정도 가격이 내린 셈이다.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케빈 마틴 위원장은 "통신회사가 인터넷 TV(IPTV)를 제공하고 케이블 방송업체가 인터넷 전화(VoIP) 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통신.방송 융합 서비스에 진입 장벽을 없애야 공정 경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불붙은 몸집 불리기 경쟁=FCC가 1996년 이후 통신.방송 등 분야별 규제 장벽을 없애면서 관련 업체들은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미 정부는 84년 시장 독점을 이유로 AT&T를 장거리 전화 서비스만 하도록 조직을 축소하고, 지역 전화 사업은 '베이비 벨'이라는 7개 기업으로 분사했다. 그런데 지난해 베이비 벨 중 하나인 SBC가 모기업 AT&T를 거꾸로 흡수 합병하는 일이 벌어졌다. 결국 통신 시장은 전화 사업자인 MCI를 인수한 버라이즌과 함께 양강 체제가 됐다. 이통 시장도 버라이즌와이어리스와 SBC가 주요 주주인 싱귤러와이어리스.스프린트와 넥스텔 합병사 등 3강 체제로 재편됐다. 한 사업자가 전국 가입자의 30% 이상을 차지할 수 없게 만든 미 케이블법이 2001년 타임워너의 소송으로 깨진 뒤 규제당국은 SBC.스프린트 등의 대형 인수합병(M&A)을 잇따라 허용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이상우 박사는 "독점으로 인한 요금 상승 압력보다 효율적 투자를 통한 다양한 서비스 제공에 정부가 더 무게를 둔 셈"이라고 말했다.

◆ 무한경쟁체제로 독점 막아=통신업체들이 대형화하는데도 독점의 폐해를 어떻게 줄일 수 있었을까. 미 시장의 진입 장벽을 없앤 덕분이다. 미국에는 버라이즌.싱귤러처럼 대규모 네트워크를 갖춘 업체뿐 아니라 이들로부터 망을 빌려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상 이동망 사업자(MVNO)가 60여 곳 된다. 영국계인 버진이 2002년 스프린트 망을 빌려 400만 명에 육박하는 가입자를 유치하는 성공을 거두자 우후죽순처럼 MVNO가 등장했다. 히스패닉(남미계 이민자) 시장을 파고든 모비다.투요, 어린이 위치 추적 서비스로 엄마들을 사로잡은 디즈니모바일 같은 독특한 서비스가 잇따라 선보였다. 김준영 남가주대 교수는 "미국에선 일단 주파수 경매로 통신사업자(MNO)를 선정하면 이를 이용해 어떤 서비스를 하건 자유"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MNO에서 망을 빌린 MVNO들은 톡톡 튀는 콘텐트로 고객을 끈다는 것이다.

◆ 대세는 컨버전스(융합화)=대형업체들은 IPTV 같은 새로운 서비스를 발 빠르게 선보인다. 버라이즌은 지난해 9월 텍사스 주 켈러 시에서 IPTV인 '파이오스(Fios) TV'를 서비스했다. 앞으로 뉴욕.플로리다.버지니아 등 7개 주 300만 가구를 광섬유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고화질(HD) 채널만 24개 등 300개 이상의 채널을 제공한다. AT&T도 2008년까지 전화 가입자(13개 주 3800만 가구)의 절반에 '유버스'란 이름의 IPTV 기반을 갖추고 570만 가구를 가입자로 확보한다는 목표다. 이동통신도 무선 인터넷과 융합에 나서고 있다. 3위 이통업체인 스프린트는 8월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와이브로를 4세대 서비스 플랫폼으로 확정하고 2008년부터 서비스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아티시 구드 스프린트넥스텔 수석부사장은 "(와이브로를 통해) 어떤 전자 기기를 쓰더라도 콘텐트에 바로 접근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무선 인터넷과 이동통신의 경계를 아예 없애겠다는 야심인 것이다.

워싱턴.LA=김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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