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문화(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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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나라엔 「문화」라는 말만 붙이면 얼굴 뜨거워지는 일들이 너무 많다. 가령 자동차는 많은데 「자동차문화」는 없다. 정치는 넌더리가 나게 과잉인 우리나라에서 정작 있어야 할 「정치문화」는 전무다.
꼭 마찬가지로 민주화이후 여기저기서 토론을 벌일 일들은 많은데 「토론문화」는 없다. 어쩌면 토론의 수준에도 못미치는 시비만 있을 뿐이다.
미국 사람들은 금세기 최대의 토론으로 1960년 대통령선거때 닉슨과 케네디의 TV대결을 꼽는다. 결과는 케네디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닉슨이 진 이유는 오로지 하나,토론기술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케네디는 하루 전날밤 동생 로버트와 밤 늦도록 토론연습을 했다. 로버트는 기발한 질문을 던지고 케네디는 그때마다 순발력과 유머센스를 발휘했다.
로버트는 형의 말에 유머와 광채가 없으면 점수를 주지 않았다. 닉슨은 그날밤 호텔방에서 부인과 함께 신경질적으로 초조한 시간을 보냈다.
영국작가 제임스 민친은 『정치적 토론에서 열은 지식과 반비례한다』는 말을 했다.
한마디로 토론하면서 열내는 사람은 무식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소크라테스같은 근엄한 논설가도 토론을 할 때면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상대방이 격렬한 표정으로 반대를 하면 그 순간 이쪽에선 이미 승리를 예감할 수 있다.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이 이성을 다스리지 못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미국이나 유럽쪽의 초급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주로 가르치는 것은 토론이다. 물론 토론의 원론을 교육하는 것은 아니고 토론을 할줄 아는 방법을 가르친다. 교사가 과제를 주면 학생들은 빙 둘러앉아 그 해답을 찾는 토론을 한다. 선생은 옆에서 정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준다. 아니면 토론이 빗나갈 때 바로잡아주는 역할만 한다.
우리는 요즘 TV에서 벌어지는 무슨 토론을 볼 때마다 두가지 인상을 갖게된다. 하는 위선과 요설의 경쟁이요,또 하나는 토론 아닌 싸움구경을 하나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토론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문화란 도덕적인 우월을 말한다. 그런 것이 없다. 우리나라 교육에도 문제는 있다. 생각같아선 다른 것은 접어두고 TV토론에서 토론하는 방법부터 토론하는 것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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