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풀제의 현실적 문제점(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모든 제도와 법령이란 이상적 정신과 현실적 여건을 동시에 수용할 때에야 비로소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아무리 이상적인 정신을 강조한 법이나 제도라 해도 그것이 현실을 무시한 공허한 이상에 치우친 것이라면 법이나 제도로서의 현실적 적용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최근 문교부가 중교심에 보고한 내용중의 「브레인 풀」제나 대학의 법정교원 기준형 개정이 자칫 잘못하면 현실을 무시한 한가한 이상론의 전형일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만든다.
물론 이 제도와 법 개정의 근본취지가 대학교육의 질적 향상을 꾀함과 동시에 외국에 나가 있는 우수 두뇌를 국내에 유치한다는 점,대학의 교수 정원을 늘림으로써 교수 1인당 학생수를 줄인다는 선의의 정신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이상적 정신을 담고 있는 제도와 법령이 적용될 우리의 대학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해 9월의 집계에 따르면 1백여개 대학의 전임교수가 2만3천여명임에 비해 시간강사는 2만1천여명,현행 교육법이 규정한 시간강사 적정비율 30%를 훨씬 상회한 47%에 이른다.
대학교육의 절반을 담당하는 이들 시간강사가 주당 5∼6시간을 맡을 경우 평균 월수입은 20만원이다. 신분과 생계,그리고 희망마저 없는 「보따리 지식 노동자」들이 그래서 전강협을 만들고 노조결성을 추구하고 있다.
설령 수년의 각고끝에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해도 엄청난 기부금을 재단에 내지 못하면 전임 자리를 넘볼 수 없다는 소문이 대학가에 파다한 현실이다.
그뿐인가. 지난해 대학교육협의회가 발간한 「한국고등교육지표」에 따르면 전체 대학교수 1명에 학생 46.2명꼴,그중에도 40여 사립종합대학은 59명에 이른다. 현행의 교원기준령 22명을 두배 상회하는게 오늘 우리 대학의 실정이다.
이런 형편에서 정부가 70억원의 예산을 들여 국외에서 활동중인 박사를 국내로 유치하자는게 「브레인 풀」제이고 교수의 숫자를 더 확보하라는게 교원기준령 개정안이다.
이미 국내에 들어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실의에 차있는 젊은 박사들이 숱하고 국내에서도 피나는 노력끝에 자신들의 학문세계를 구축한 사람들이 「보따리」장사에 힘겹게 살아가는 데도,이런 현실을 외면한채 70년대식의 해외두뇌 유치에 우선적 배려를 한다면 그 제도가 현실적 설득력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교수 1명당 22명인 현행 기준령을 19.4명으로 법 개정만 한다 해서 교수 1명당 46.2명인 현재의 대학 콩나물 교실이 저절로 개선될 수 있다고 보는가.
선의의 목적을 지닌 제도와 법이 현실적 효력을 갖기 위해선 당면의 현실을 구조적으로 풀어가는 개선안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기왕의 브레인 풀제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려면 현재의 강사들 가운데서 공개적 전형과정을 거쳐 임용하는 방법을 최우선으로 해야 될 것이고 교원기준령을 더 낮추기 보다는 현재의 기준령에 미달하는 대학의 지도ㆍ감독에 더욱 충실해야 할 것이 문교당국의 당면목표여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