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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디”중국식 통일방안 3제/권영빈(중앙칼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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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출발시간이 임박한 홍콩발 광주행 비행기 9번 게이트 앞에는 장사진이 쳐있었다. 닫혀진 탑승구 앞에서 「비룡여행사」라는 둥근 배지를 가슴에 단 대만관광단 50여명이 초조한 빛도 없이 신나게들 떠들고 있다.
『대륙 여행이 몇번째인가』 『세번째야. 당신은?』 『처음인데… 고향에 가는 길이야』 휴가ㆍ방학탓인지 중국대륙을 여행하는 대만관광단은 대륙 오지의 한산한 호텔에서든,북경ㆍ상해ㆍ광주의 붐비는 호텔로비 어디에서든 쉽게 만날만큼 그 숫자는 엄청났다.
이들 여행자들이 들고 있는 서류란 외국인 여권(호조)이 아니라 여행사가 발행한 손바닥 크기의 여행허가증 한장이었다. 45년 2차국공합작이 깨어진 다음부터 4년째 피의 내전을 거듭하다 대만으로 밀려난 장개석 국민당의 당사자와 후손들이 모택동의 공산당 땅을 자유스럽게 왕래하고 있는 오늘의 풍경이다. 양국간의 총리회담이 요란스레 있었던 것도,범 민족대회가 열린 것도 아니고 정상회담에서 결정한 사실도 아니지만 대만인의 대륙여행은 탐친 5년이래 이젠 자연스런 추세로 보편화되었다.
장위국씨라면 장총통의 2남이고 장경국의 동생이다. 80년초까지만해도 우리식의 보안사령관과 군부대 일체의 물자와 급식을 담당하는 군수사령관을 겸직하면서 장경국 사후의 통치자로 손꼽히던 막강한 인물이었다.
이 장위국씨가 지난해 11월 손문탄생을 기리는 한 기념식장에서 손문이 황포군교를 세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당시 조수였던 장개석ㆍ대계도ㆍ김송반의 아들 4명,경국ㆍ위국과 대안국ㆍ김정국이 함께 놀던 추억을 떠올렸다. 경국ㆍ안국은 이미 세상을 버렸지만 정국의 소식만을 알길없다는 안타까운 심정의 토로가 있었다.
이 보도가 대만신문에 발표된 다음,중국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상해의 신민만보가 김정국을 수소문한지 9개월만인 지난 12일 마침내 안휘성 합비시에서 그를 찾았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되었다.
『내나이 이미 74세,이제 더이상 무슨 바람이 있겠는가. 오직 한가지 희망이라면 해협양안이 하루빨리 통일되어 옛 친구를 다시 한번 만나보는 것 뿐이오』라는 김씨의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었다.
중국최대의 개방도시 광주에서 자동차로 2시간 반 남짓가면 손문의 출생지인 중산시 취형촌에 이르게 된다. 이 한적한 마을에서 8월2일에서 7일까지 엿새동안 「손중산여아주」라는 주제의 국제학술토론회가 열렸다.
중국의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중국학자 80여명,대만학자 40여명,일본학자 20여명,한국 4명,홍콩ㆍ미국ㆍ인도등지의 학자까지 포함해 2백3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학술대회였다.
형식상으로는 중일의 손문연구회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학술대회이지만 내용상으로는 중국과 대만이 40년만에 공식적으로 첫 대면을 해 문화ㆍ학술교류의 첫 장을 여는 「문화적 제3차 국공합작」이라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민족 왕조인 청조를 무너뜨리고 신해혁명을 주도했던 손문에 대한 평가는 대만에서는 처음부터 국부로 모셔진 터이고 대륙에서 또한 혁명가로서의 그의 지위는 높이 받들어져 왔다. 즉,중국과 대만양쪽이 함께 존경하는 인물을 내세워 그에 대한 연구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역사적ㆍ정신적 동질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이를 계기로 한단계 높은 문화교류의 증진을 꾀하자는게 이 모임의 참뜻이었을게다.
정치적 논쟁을 배제한다는 원칙은 철저하게 양쪽에서 지켜졌고 하루 세끼씩 자리를 함께하는 2백여평의 식당에는 매번 명함이 교환되고 광동요리의 성찬을 예찬하며 고향산천을 이야기 하고 지인의 안부를 묻는 자리가 되었다. 그것은 단순한 인적 왕래와 교류를 넘어선 문화교류의 첫발을 딛는 사건이었음에도 개폐회식이 있던 날의 광동 TV 9시뉴스시간에는 말미에 손중산학술대회가 열렸다,끝났다만을 알리는 단신이 흘러나왔을 뿐이다.
어느날 저녁 식탁에서 대만측 대표의 한사람인 중앙연구원의 장옥법박사와 한국측 대표인 민두기교수가 자리를 같이했다. 『같은 분단국인 한국의 입장에서 이번 대회를 보면서 무척 부러웠다. 선생의 감회는 어떠한지?』 『서로가 1백% 만족할 만한 대회였다. 이번 대회에 상응할 대회를 대만쪽에서도 금년말 개최하려고 한다. 주제는 가족제도가 될 것이지만,그 이전에 공산당원 입국을 허용할 보안법이 개정되어야 할 것이다.』
24일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중국 공산당원의 대만방문을 허용하기로 했다는 대북발 외신이 서울의 조간신문에 조그맣게 실려 있었다. 결코 정치적 선전이나 허장성세없이 조용하고도 단계적으로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중국과 대만간의 통일과정을 현장에서 본 필자로서는 인적 왕래와 비 정치적 경제ㆍ문화교류가 분단과 증오의 벽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한 힘임을 새삼 확인했다.
요란한 정치선전이나 정권유지 차원의 선언이나 성명은 결코 남북간의 벽을 허물수도,낮출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분단의 벽을 높이는 쪽으로 기능하는 것임을 거듭 느끼기도 했다.
『지금(김일성주석이 노태우대통령을)만나시면 누구 살려주는 꼴』이 되어 결국 남북정상회담은 열리기 어렵다고 조평통 전금철부위원장은 중앙일보 이찬삼특파원과의 회견기에서 밝혔다.
남쪽 정부에 이득이 갈 정상회담이나 통일을 향한 접근자세는 결코 북쪽에서 보여줄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남북의 문제를 민족통일의 대원칙도 아니고 이산가족의 재회라는 인도적 차원에서도 아닌 남과 북의 정치적ㆍ정권적 차원에서만 해결하려 든다면 우리의 분단은 영원할 수 밖에 없다는 참담한 비관에 빠지게 된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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