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나비의 문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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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나비의 문장'- 안도현(1961~ )

오전 10시 25분쯤 찾아오는 배추흰나비가 있다

마당가에 마주선 석류나무와 화살나무 사이를 수차례 통과하며

간절하게 무슨 문장을 쓰는 것 같다

필시 말로는 안 되고 글로 적어야 하는 서러운 곡절이 있을 것 같다

배추흰나비는 한 30분쯤 머물다가 울타리 너머 사라진다

배추흰나비가 날아다니던 허공을 끓어지지 않도록 감아보니

투명한 실이 한 타래나 나왔다



투명한 실 한 타래 얻어다 다시 풀어보면 새 문장들 나올 것이다. 간절하고 서러운 사연이 나올 것이다. 배경에 울타리도 나오고 석류나무.화살나무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그 사연은 분명 말로 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숨결과 온기, 참을성, 허기, 뭐 그런 것들로 되어 있을 것이다. 실 다 풀면 손 대신 빛이 나타나지 않을까?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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