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문단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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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소련을 비롯, 80여개국에서 예술의 창작 규범이자 방법론으로 기능하고 있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폐기될 것인가.
1985년 고르바초프 집권 이후 소련과 동구권에서 일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 열풍은 문학과 예술의 영역에서도 지난 시기에 대한 총체적·역사적 재조명과 자기 비판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의 위기로까지 지칭되는 현시점에서 소련 문학계 내부에서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둘러싸고 열띤 논쟁들이 전개되고 있으며 급기야 모스크바 세계 문학 연구소에서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시각을 포기한 새로운 『소련 문학사』를 내년 상반기에 발간하기로 결정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때 소련 문단 내부에서 일고 있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논쟁을 정리, 분석한 김규종씨의 논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퇴조할 것인가」가 나와 주목된다. 서독 자유 베를린 대 박사 과정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씨는 『한길 문학』 9월호에 기고한 이 논문에서 『현재 이 논쟁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논자들은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보내면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이론은 분명히 현존 사회주의 문화 발전이라는 역사적·실천적 과제로부터 낙후돼 있으며, 시대 정신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된 인식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씨에 따르면 『복잡 다기한 사회 현상이나 가치관의 변화 과정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이상 연구할만한 의미도, 가치도 없다』며 폐기론의 선봉에 선 논자는 E셰르게 예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강령을 좇아 집필된 작품들보다 그것을 벗어난 작품들이 더 깊이 현실을 이해하고, 시민적 용기로 충만 돼 있으며, 예술적 성취도 우수하다』고 주장하는 셰르게예프는 『스탈린 시대 개인의 권력강화를 목적으로 설정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스탈린 사후 지난 30여년 동안 전혀 존재하지도, 기능하지도 않았다』며 이미 이것이 사멸된 것임을 구체적 작품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한편 D 마르코프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화석화되고 이미 죽어버린 공허한 개념이 아니라 단지 그릇된 사회주의의 역사적 과정에서 낙후돼 있을 뿐』이라며 『새로운 제반사회상황에 맞게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수정론자로 앞장서 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가 현재적 낙후성에도 불구, 나름의 내적동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마르코프는 『스탈린의 개인우상화를 위해 사회를 무조건 밝게 그리라는 「무갈등이론」의 폐지, 당파성과 인민성 개념에 대한 과학적 재조명 등을 통해 「현실과 인민 앞에 진실하라」는 레닌적 명제에서 다시 출발함으로써 새로워질 수 있다고 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는 l934년 소련 작가 동맹의 결성과 아울러 모든 문학과 예술의 창작방법론으로서 전일적인 지도 지침이 돼 왔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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