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팽창예산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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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22일 당정협의회에 내놓은 내년도 예산안은 몇가지 점에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예산규모의 팽창에 따른 재정인플레를 적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날 제시된 내년도 일반회계 예산규모는 올해 본예산에 비해 19.5%가 늘어난 27조1천2백억원이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82년이래 9년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인데 여기에 일반회계에서는 제외되지만 사실상 국고에서 나가는 지방양여세까지를 합하면 증가율은 무려 28%정도에 달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정부는 올해에 이미 1조9천8백억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했고 이번에 다시 같은 규모의 2차 추경안을 제출해 놓고 있다.
올 연말과 내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재정자금이 풀리게 된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는 정치ㆍ경제ㆍ사회 전반에 걸쳐 일찍이 겪지 못한 구조조정기를 맞고 있다. 지방자체제의 실시,산업구조 고도화와 개술개발,사회복지 확충,농어촌구조개선 등 할 일이 산적해 있다. 또 그 대부분의 일들이 정부의 개입과 조정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다. 이같은 필요에 대처하기 위해 예산수요가 급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안정기반의 구축을 통한 서민생활의 보호다. 국내 물가는 7월말에 7ㆍ8%가 올라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데다 설상가상으로 중동사태까지 터져 내년에는 석유에너지 가격을 21%나 올려야할 상황이다.
그동안 억눌려왔던 공공요금도 더이상의 억제가 어려워 내년에는 대부분 현실화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이같은 여건에서 재정규모의 확대가 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부가 이같은 문제에 대한 선명한 설명없이 팽창예산을 내놓은 데 대해 국민은 불안감을 감추기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예산의 68%는 인건비ㆍ경상비 등 경직성 예산이다. 반면 정부가 당초에 크게 강조했던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부문은 증가액도 5천억원 수준이고 사업도 크게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사회간접시설의 부족이 경제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니 예산을 늘려 이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해놓고 실제로 별 내용이 없다면 무엇 때문에 인플레 위협을 감수하면서 규모를 늘렸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정부의 재정운용에서 가장 큰 문제는 지나치게 비대해진 정부조직을 유지하는 데 따르는 경직성 경비인데 이 부문에 대한 감량경영의 의지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단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내년에 처음 도입되는 지방양여세의 운용방안이 명확히 제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번에 교육세ㆍ전화세ㆍ토지초과이득세 등으로 조성될 2조원 규모의 재원을 지방재정에 지원,도로포장사업ㆍ교육비 등에 쓰도록 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다.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두고 지방재정을 늘린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그 관리를 중앙정부가 맡아 사업마다 간여한다면 이는 자칫 지방자치를 유명무실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될 것이다. 또 양여세 사용에 중앙관서 특히 내무부가 관여한다면 이번 2조원에 달하는 재원이 92년의 선거와 관련한 선심사업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살 수도 있다고 본다.
지방양여세는 재정자립도에 따라 안배하되 사용내용을 간여하지 않는 체제가 구축돼야 지방자치제의 발전이나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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