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옥(용인군 외서면 백암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서울시내 이름난 순대국 집은 다 찾아다녔다. 또 전국 각지를 돌아다닐 기회가 많은 탓으로 시간만 나면 지방 여러 곳의 유명한 순대국 집을 수소문해 찾아가 맛을 본다. 무슨 술이든 잘 마시고 무엇이든 잘 먹는 잡식형이지만 혀 끝은 비교적 정교한 편이다.
한번은 어느 호텔 음식점에 들어가 반주로 버번 위스키 「잭 대니얼스」를 주문했더니 한참 있다 웨이트리스가 술이 가득찬 잔을 들고 들어와 주문 받은 술이 없다면서 『대신 가지고 온 이 술을 맛보고 무슨 술인지 알아 맞혀달라』며 바 주인의 부탁이라고 덧붙였다.
혀 위에 술을 올려놓고 굴리듯 목으로 넘긴 뒤 「핀치」라고 단정했다.
듣고 나간 웨이트리스가 잠시 뒤 술 한잔을 더 들고 들어와 『정확히 술맛을 분간하는 분을 만나 반갑다』고 하면서 한잔 더 드시고 오늘 술 값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랑 같지만 이렇게 정교한 혀를 가지고 전국 수십 군데 순대국 집을 찾아다니다가 몇 년 전인가 기억은 나지 않으나 나의 혀끝을 완전히 만족시켜준 진짜 순대국 집을 찾아냈다.
경기도 용인군 외서면 면 소재지에 있는 「풍성옥」(0335-32-4604)이 바로 그 집으로 옛날 어릴 때 맛보던 순대국의 완벽한 재현이었다. 맛이 어떻다는 것을 글로 표현할 순 없고 어떻든 최고중의 최고였다.
잘라서 접시에 놓은 마른 순대도 맛의 극치려니와 국 맛 또한 걸작품이다.
풍성옥이 있는 백암리를 용인 사람들은 배개미라고도 부르고 있으며 그래서 배개미 순대라고도 이름이 붙여진 이 집의 순대는 오래 전부터 소문나 있었다. 나의 고향인 용인의 이름난 순대국 집을 뒤늦게 지각 발견한 꼴이 되었으니 후회 막급일 뿐이다.
5일 장이 서는 날만 순대를 빚어내는 희소성 가치를 제법 유지해 왔으나 손님들 성화로 요즘은 어쩔 수 없이 거의 매일 내놓는 모양이다. 국민학교와 중·고등학교 때 겨울방학마다 고향에 가면 혼인잔치나 환갑잔치가 동네 안에서 너 댓 번은 있다. 그때마다 큼직한 가마솥에서 끓여내는 순대국의 그 구수한 냄새와 맛. 나는 아직도 그 원형을 향수처럼 간직하고 잊지 못한다.
아마도 순대국 원형을 찾고자 전국을 찾아 다녔던 모양이고 종착지는 풍성옥이었다. 이 집 주인할머니의 따님이 분가해서 차린 근처의 「돼지집」이 있고 또 몇 집 건너에 「중앙옥」도 있다. 모두 순대국 원형적인 맛을 간직하고 있어 틈만 나면 찾아가 혀끝을 만족시킨다.
이렇게 이름난 순대국 집이지만 풍성옥 주인은 겸손하기만 하다. 이 글을 쓴다면서 주소와 전화번호를 달라니까 그럴 것 없다고 손을 내저으면서 한사코 알려주지 않아 이웃을 통해 알아낼 수 밖에 없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