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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자유대 클라우스 마이어 교수(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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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광복절 특집… 「통독」교훈과 한반도 분단 극복의 길/“「통일비용」 감당할 경제발전 긴요”/경협ㆍ교류에 노력과 인내 필요/서두르지 말고 북한 도와줘야/평양도 10년이내 동구수준 변화 불가피
앞으로 불과 몇달 있으면 독일이 분단을 청산하고 통일된다. 지난해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때까지도 독일의 통일이 이토록 빨리 성사되리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은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 한민족의 통일은 아직 그 윤곽조차 그려낼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독일의 통일과정을 살펴보면서 분단 45년을 맞는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베를린 자유대의 클라우스 마이어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다.<편집자주>
【베를린=유재식특파원】 『40년 이상을 서로 다른 질서와 가치관 속에서 갈라져 살아온 민족이 통일을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독일의 통일도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았다. 수많은 공개적인,혹은 비공개적인 노력의 결과이며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기도 하다.』
역사적인 국가통일을 눈앞에 두고 있는 독일국민들은 분단극복을 위해 그간 어떠한 노력을 해 왔으며 우리가 이들로부터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만 하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베를린 자유대의 클라우스 마이어 교수(62ㆍ역사학)는 독일국민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인들도 끝까지 인내심을 갖고 노력하면 분단은 극복되게 마련이라며 「인내」를 여러차례 강조했다.
서베를린 가리가 55번지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독일통일의 과정과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조언을 들었다.
­독일식으로 표현하면 이제 독일의 통일은 「문앞에 서 있다」. 같은 분단국인 한국인들이 독일통일에 갖는 관심은 특별하다. 한국에선 요즘 「독일은 되는데 우리는 왜 잘 안되나」라는 의문이 학자는 물론 모든 국민들의 관심사다. 독일의 통일을 가능케한 요소는 무엇인가.
□…동국 변화가 전기…□
『독일을 통일로 이끈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으며 상호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그러나 대충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째,내부적 요인으로는 무엇보다도 동독의 변화,즉 동독의 민주혁명을 꼽을 수 있다. 사실 이 부분이 독일통일에 가장 극적이며 결정적 요인이 됐다. 지난해 11월 베를린장벽 붕괴가 통일의 출발점이었다. 40여년에 걸친 실정과 경제의 파탄으로 동독국민들은 더이상 자신들의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게 됐고 이 때문에 정부가 주도하는 「위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국민들이 주도한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가능했다. 지난해 가을의 동독 민주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혈혁명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초기에 무력진압이 있었으나 시민들이 끝까지 비폭력 혁명으로 일관,결국 정부도 손을 들었다. 동독의 민주화가 독일통일의 필요조건을 마련한 셈이다.
둘째,외부적 요인으로는 무엇보다도 고르바초프와 그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이 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독일 국민들,특히 동독 국민들은 고르바초프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기 직전 호네커나 뒤를 이은 크렌츠같은 인물이 군대를 동원,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지만 고르바초프가 이를 막은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해 독일의 통일은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이 조화돼 빚어낸 산물이며 어찌 보면 역사의 필연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현재의 통일작업은 거의 서독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동독의 노력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간 동ㆍ서독은 통일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나.
『동ㆍ서독 정부는 그간 공식,혹은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통일을 준비해왔다. 물론 겉으로는 「통일」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또 서로 상대를 인정하면서 교류의 폭을 넓혀왔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서 있는 서독의 동독지원은 민족의 동질성을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경제지원이 큰 몫…□
정부는 물론 국민들도 상호 방문등을 통해 심리적ㆍ이념적 측면에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동독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점이며 동독 국민들에겐 서독이 국가발전의 전형이 됐다는 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우선 서독은 독일 역사상 가장 완벽한 의회민주주의를 실현해 동독 국민들에게 국가건설의 모델을 제시했다. 형제국이 민주국가로 있다는 사실이 동독 국민들에게는 커다란 「비전」이었다. 물론 서독엔 비밀경찰이나 언론검열 같은 것이 없다는 사실도 동독 국민들에게는 또다른 자극이 됐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지원이다. 이는 서독이 그만한 경제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독의 철도나 도로 등 산업기반시설 건설에 서독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 다른 측면의 지원은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동독 국민들이 서독 TV를 시청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이질화를 극복하고 오늘의 통일에까지 이르게 된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통독비용 계속 필요…□
­지금까지 계속된 이러한 노력은 통일후에도 계속돼야 할 것으로 보지 않는가.
『물론이다. 그간 서독이 동독에 대해 많은 경제적 지원을 했지만 앞으로 필요한,이른바 「통일비용」은 이제까지 보다 훨씬 큰 규모라는게 경제학자나 통일을 주도하는 관리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또 그간 동ㆍ서독 국민간의 동질화 작업이 많이 진행됐다고는 하지만 40년 이상을 서로 다른 정치ㆍ경제ㆍ사회 체제에서 살면서,그것도 어제까지는 「적」이었던 상대를 오늘 당장 「형제」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무리다. 따라서 이러한 동질화 작업은 경제적 지원과 같은 가시적인 것은 물론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도 계속돼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동ㆍ서독이 완전한 「하나」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적어도 5년,길게는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본다. 그러나 방금 말했듯 이미 동질화 작업이 진행중에 있으므로 의외로 빨리 이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한쪽(동독)이 이념보다는 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독일이 통일되는 것에 대해 주변 국가들은 우려하는 바가 많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물론 우리의 「나쁜」과거 때문이다. 주변국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서독이 지난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우승했을때 단편적으로 드러나기도 했지만 일부 젊은층들의 무분별한 국가주의적 성향은 계도돼야 한다. 그러나 통일독일이 민주체제로 나아갈 것이 확실한 이상 주변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위험이나 모험적인 국가주의의 재등장은 불가능할 것이다.』
□…남북한도 길 열려…□
­독일의 통일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의 심정은 한마디로 부럽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한국인들이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
『한국은 독일보다 상황이 어렵다. 동질화작업 보다는 서로 이질화작업을 많이 했다. 게다가 전쟁까지 치렀다. 이러한 요소들 때문에 한국민의 통일에 대한 열망은 종종 좌절을 겪어 왔다. 그러나 한국의 통일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한 국민이나 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독일의 경험을 돌이켜 볼 때 세가지가 필요하다. 첫째,평화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둘째,인내심을 가져야한다. 한반도 분단의 역사가 45년이라고 하지만 역사학을 공부하는 본인의 생각으로는 45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절대 서두르면 안된다. 셋째,북한을 경제적으로 도와야 한다. 이를 위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남한은 더욱 경제발전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통일비용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충족되면 세계사의 흐름에 힘입어 통일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제적 요인,세계사의 흐름도 중요하지만 결국 민족의 장래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
­세계사의 흐름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동서냉전의 시대는 끝났다. 공산주의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10년 이내에,즉 2000년까지 북한ㆍ알바니아ㆍ쿠바도 현재의 동구수준으로 변화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국민들이 더이상 참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세계사적 흐름과 독일의 통일과는 어떤 관계가 있나.
『냉전구도의 산물인 양대 군사블록은 이미 해체와 변화의 길로 접어 들었다. 독일통일로 유럽에는 조만간 동서를 망라하는 단일 안보체제가 등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계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평화공존의 시대를 맞게될 것이다.』
­이러한 동서화해 분위기와는 별도로 이번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사태에서 보듯 국지적인 갈등에는 강대국들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드러난 것이 아닌가.
□…“정의는 승리한다”…□
『소련이 페르시아만에 군함을 파견,공동보조를 취한 것은 실로 의미있는 사태진전이다. 동서화해의 세계질서를 깨뜨리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초강대국간의 의견일치를 보여준 「사건」이다. 이처럼 이제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동서간 대결보다는 상호이익을 고려한 국가간 협력이 국제정치의 근간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남북문제,즉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갈등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동서화해와 이에 따른 군축으로 남는 여력을 제3세계를 도와주는데 써야 한다.』
­북한의 폐쇄체제를 잘 아는 학자들도 북한의 개방은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귀하의 견해는 어떠한가.
『호네커가 그랬고 차우셰스쿠도 그랬다. 그들의 권좌가 영원히 유지될 것으로 「착각」했다. 북한도 지금과 같은 고립정책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는 없다. 결코 오랜 시일은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내가 필요하다.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말고 대화와 타협으로 그들을 개방과 통일의 길로 나오게 해야 한다. 정의는 언제나 승리하는 법이다.』
□약력
▲28년 서독 슐레스비히 홀스타인주 렌츠부르크에서 출생
▲킬대ㆍ함부르크대ㆍ베를린자유대에서 러시아 및 소련역사 전공
▲61년부터 베를린자유대에서 강의. 현재 동구문제연구소 주임교수
▲저서 『1917년 이후 소련의 교육정책』『소련의 학술활동』외 논문 3백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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