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 조만식선생/대전 국립묘지에 “가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더이상 생존어렵다” 판단/독립기여등 업적 고려/가족에 맡긴 모발안장
해방직후인 46년2월 반탁운동으로 평양고려호텔에 억류된 이후 생사여부가 확인되지 않고있는 「비폭력 불복종」을 실천한 애국운동가 고당 조만식선생의 가묘가 남한에 설치된다.
정부는 14일 고당 조만식선생의 가묘를 대전국립묘지에 마련키로 결정했다.
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1883년생인 선생이 지난2월1일 탄생1백7주기를 넘김으로써 더이상 생존해있을 가능성이 희박하고 유가족들의 희망 등을 고려해 내려진 것이다.
지금까지 국립묘지에는 독립유공자의 유골 또는 사체가 안장되지 않는 가묘는 설치된 예가 없어 선생의 가묘설치는 국내사상 처음이다.
이에따라 정부는 선생이 북에서 연금중이던 46년 가족들에게 잘라 맡겼던 모발을 대신 가묘에 안장할 예정이다.
이번 결정은 수장된 자,기타 찾을 수 없는 자의 모발은 유골로 간주해 통상적인 유골이나 시체대신 안장할 수 있도록 하고있는 국립묘지령 제3조에 따른것으로 당초 정부내에서는 이번 결정에 앞서 국방부ㆍ국립묘지관리소 등이 ▲가묘설치때 연쇄적인 설치요구가 예상되고 ▲남북에 2개의 묘소가 존치되는 상황도 가능하고 ▲당사자가 생사불명이며 ▲설치때 북한의 열사통과 비교하는 여론이 예상된다는 점 등을 들어 신중론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국립묘지의 안장능력상 유골 또는 시신이 있은 애국지사의 경우도 이장희망을 모두 수용키어려운 점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70년 대한민국장을 포상한 선생의 훈격이 현저하게 높고 조국독립에 기여한 정도가 탁월한점 등을 감안,파격적인 조치를 내린것으로 알려졌다.
선생에 대한 가묘설치를 계기로 88년초 복권돼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남북인사 22명에 대한 예우문제도 본격적으로 검토될 것으로 알려졌다.
선생은 평남 강서군 각석면 각일리에서 태어나 일본 명치대법학부를 졸업한뒤 오산학교교장ㆍ조선일보사장을 역임하면서 「비폭력불복종」을 실천하는 애국운동으로 일관,「한국의 간디」로 추앙받았다.
선생은 해방직후 북한최고지도자로 추대돼 조선건국 평남준비위원장에 취임했으며 소련군진주후 조선민주당수로 선출됐고 46년2월 반탁운동을 전개하다 소련군에 의해 연금됐다.
부인 전선애여사(87)와의 사이에 4남3녀를 두었으며 부인과 3남2녀는 48년11월 월남했다.<이하경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