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우 목욕 시키는 '때밀이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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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일 대구시장(右)이 23일 오후 시청 공무원과 인제요양원에서 장애인을 목욕시키고 있다. 대구=조문규 기자

"시원하지요. 기분 좋아요?"

"선생님이 물어 보시잖아. 예~ 해야지."

23일 오후 3시 대구시 수성 4가 인제요양원 307호. 중증장애인 6명이 생활하는 방 옆 목욕실에서 김범일 대구시장이 유모(21)씨의 머리에 비누칠을 한다. 팔.다리를 둥둥 걷은 김 시장은 혹시 유씨가 다칠까봐 조심조심 손을 움직였다. 한 평 남짓한 목욕실 바닥의 비닐 매트에 누운 유씨는 기분이 좋은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어 김 시장이 거품을 칠한 수건으로 유씨의 등.다리를 문지르면서 "피부가 희고 참 곱네. 발은 왜 긁혔어요?"라고 묻는다. 유씨 대신 현태옥(44.여) 재활교사가 "친구들과 장난치다 그랬다"고 대답한다.

김 시장은 유씨를 일으켜 세워 양치질을 해주었다. 목욕이 끝난 유씨는 "아~"하고 소리를 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유씨는 팔.다리가 마비돼 혼자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중증 장애인이다. 김 시장은 유씨와 함께 생활하는 5명의 20대 중증 장애인들에게 일일이 손을 잡고 말을 건네는 등 '친구'노릇을 했다.

현 교사는 "시장이 직접 아이들을 목욕시켜 주니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며 "앞으로 많은 사람이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른 재활교사 우임태(54.여)씨는 "원생들이 너무 좋아해 잔치가 벌어진 것 같다"며 웃었다.

인제요양원은 1949년 설립된 중증 장애인 요양 복지시설로 154명(18세 미만 45명, 18세 이상 109명)의 장애인이 생활하는 곳이다. 대다수가 저소득층 자녀인데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누워서 생활해 78명의 직원이 24시간 3교대로 이들을 돌본다.

김 시장은 "재활교사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알 수 있었다"며 "중증 장애인들에게 더욱 관심을 갖고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대구시 정명섭 도시주택국장 등 간부 공무원 10여 명은 인제요양원에 기저귀 1500개와 간식용 바나나 다섯 상자를 전달하고 원생들의 팔.다리를 마사지하는 등 물리치료를 도왔다.

대구=홍권삼 기자<honggs@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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