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왕야오, 시험문제를 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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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제11회 삼성화재배 세계 바둑 오픈'

<16강전 하이라이트>
○ . 왕야오 6단 ● . 이세돌 9단

이세돌의 바둑은 시원하다. '끊기'와 '전투'를 즐기는 구경꾼들의 기대를 허무는 법이 없다. 어쩌면 마구잡이 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만 심후한 내공이 뒷받침돼 공중제비나 줄타기 이상의 명품을 연출해 낸다. 그러나 이세돌은 함정이나 매복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종종 퇴로가 끊긴다.

장면도(76~82)=지금 이세돌 9단의 흑▲가 전갈의 침처럼 번득이고 있다. 모험적이고 치명적인 이세돌 식의 강수. 여차하면 쌍방 한방에 끝장난다.

어려운 시험문제를 받아든 왕야오(王堯) 6단이 무섭게 장고한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난다.

'참고도1'처럼 백1로 막는 것은 흑4까지 비틀비틀 빠져나올 때 봉쇄가 안 된다. A가 선수라도 안 된다. 백이 걸려든 그림. 또 '참고도2'처럼 위에서 막는 것은 안전하긴 하지만 너무 소극적이어서 6까지 실리를 고스란히 빼앗기고 만다.

어려운 상황이다. 어쩌면 백은 걸려 들고 말지도 모른다. 그런데 왕야오가 뜻밖의 호착을 찾아냈다. 76이다. 이 수가 등장하자마자 사방에서 아하! 하고 찬사가 쏟아지는 걸 보면 왕야오가 시험문제를 제대로 풀었나 보다.

76은 어정쩡한 듯싶지만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제압하는 이유제강(以柔制剛)의 전형적인 한 수였다.

흑은 B쪽 길이 끊겼으니 77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이번엔 78이 근사하게 성립하고 있다. 흑은 81까지 중앙을 틀어막았으나 백도 82까지 두 점을 잡았다. 결국 흑▲는 실패했고 국면은 조금 더 심각해졌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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