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아침] '억새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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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억새풀'- 이윤학(1965~ )

암소가 뜯어먹은 억새풀

암소 이빨 자국을 밀어붙인다

암소 이빨 자국을 뿌리에서

최대한 멀리로 밀어붙인다

연한 억새풀 억세게

양날을 세운 칼날에

톱날을 갈아 세운다

칼끝이 잘린 칼자루 속으로

이슬방울이 들어가 숨는다

이 세상은 칼집인 것이다



암소가 뜯어먹은 풀 자죽은 예쁘죠. 오, 그 풀 뜯는 소리. 사람이 암소 편이라 그렇죠. 억새는 상처를 아물리느라 염천 하늘 아래 힘겹죠. 여름 내내 제 상처를 되도록 멀리 보내는 억새는 그래서 이름이 억새인지. 제 상처를 그렇게 멀리 멀리 보내다 보면 거기 이슬 맺고 억새꽃 핍니다. 칼집에서 솜꽃 피니, 억새꽃 보면 숨 한번 깊이 들이쉽시다. 칼들 먹고 암소도 송아지를 낳았을 것!

<장석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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