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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다도해처럼 푸른「문향」의 자존심|목포 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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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서 인물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자랑 말고 목포에서 욕 자랑 마라.』
「목포 애국가」라 할만큼 목포 시민들이 즐겨 부르는 가요 『목포의 눈물』에서처럼 부두가에서의 이별이 유달리 많은 항구 도시이기 때문일까. 일상 언어로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만남의 폭발적 즐거움을 목포 사람들은 욕으로 미화·승화시켜 표현한다.
정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욕의 도시 목포.
목포 거리나 관공서 등에는 「아껴놓은 땅 미래의 국제 도시」란 표어가 보란 듯이 나붙어있다. 유달산 산동네 허물어져 가는 게딱지같은 주택들은 물론 중심가에서도 변변한 건물 한동 찾아보기 힘든 목포에 나붙은 이같은 표어는 행정 당국에 대한 욕일까, 아니면 목포의 상한 자존심을 감추어놓은 시적 표현일까.
아무튼 다도해 섬들의 방파제 구실과 함께 풍광 또한 빼어난 천혜의 항구 도시가 개발 정책에 밀려나 포구로 전락되고 있는 목포는 슬프다. 이러한 배반의 사회적 현실에도 불구, 목포의 혼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술이다. 동양화의 거목 남농 허건을 비롯, 걸출한 문인과 예인들을 배출한 「예향 1번지」가 바로 목포다.
목포 현대 문학사를 연 사람은 여류 소설가 박화성 (1904∼1988). 1925년 단편 『추석 전야』로 문단에 나온 박씨는 1965년 한국 여류 문인회 초대 회장을 지내며 한국 여류 문학의 대모로 떠올랐다. 박씨는 특히 해방 직후 자신의 서재를 목포 문학인들의 사랑방으로 내놓아 문학에 대한 토론을 하게 하여 목포 문학의 산실이 되게 했다.
이 사랑방에 자주 드나들던 문인으로는 조희권·이동주·이가형·나천수·오덕·정철·장병준·백두성·박문석·심인섭·최기영·차재석씨 등 당시 목포 문단을 총망라했다.
식민지 상황에 처한 지식인의 고뇌를 그리며 1920년대 신극운동을 주도하다 윤심덕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한 극작가 김우진 (1897∼1926)도 목포가 배출한 문인이다.
1930년대 들어 호남지방 최초로 목포에서 잡지 『호남 평론』이 발행되면서 목포 문학의 묘판 구실을 했다.
『거리는 잠들었다 여름밤 고요코나/그믐달 기우나니 나그네 한이런가//지난날 이한 밤에 달성사 종이 울어/삼백호 잠든 무리 깨웠다 하였지만//오늘밤 종소리는 숨죽여 들리는 듯/맥없이 흐르오니 옛 영화 새로워라//또다시 울어울어 더 높이 크게 울어/삼천리 깨웠으면 내 맘이 시원하리.』 (나천수 『달성사 종소리』전문)
1931년 8월호에 실렸던 이 시로 인해 『호남 평론』은 일제 당국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김우진의 동생 김철진이 사장으로 있던 『호남 평론』을 발판으로 문학 활동을 벌인 문인으로는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의 작사자 문일석씨를 비롯, 나천수·오덕·정철·김일로·박동화·이영해씨 등이다.
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이동주씨 등이 관여, 『예술 문화』지를 발행, 목포 문인들의 발표지면 역할을 하게 했다. 이와 같이 다른 지방에서는 엄두도 못 낼 자체 문예지 성격의 잡지를 보유하고 있었던 목포는 6·25와중에서도 6·25직후 전국 최초의 월간지 『갈매기』를 가질 수 있었다. 해군 정훈 사업의 일환이지만 조희관·이가형·장병준·백상건·이진모·강덕·차재석씨 등 목포 문인들 및 피난 문인들의 작품 발표 지면 역할을 했다. 한편 전쟁의 와중에서도 차재석씨 주간으로 앤솔로지 『시정신』을 창간, 5집까지 내며 서정주·이병기·신석정·김현승·박용철씨 등 기라성 같은 피난 시인들과 함께 목포 시인들의 작품을 함께 실었다. 이같은 목포 문단의 풍요로운 토양은 휴전 후 안정되자 많은 문인을 중앙으로 진출시키게 된다.
극작가 차범석씨를 비롯, 권일송·윤삼하·이창렬·정일진·김길호·최일수·김상일·김정숙·윤종석씨 등이 목포를 무대로 50년대에 중앙문단에 나봤으며 60년대 들어 김하림·최일환·김현·최하림·정중수씨 등 시·소설·희곡·평론·아동문학 등 전 장르에 걸쳐 문인을 배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목포 출향 문인을 50여명에 이르게 했다.
현재 목포에서 활동중인 문인은 전 장르에 걸쳐 41명. 이들은 문단을 망라한 목포 문협에 소속돼 있으면서 또 각각 「흑조 시인회」「청호 문학회」「시울 문학회」등 동인으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1975년 결성된 「청호 문학회」는 시·소설·수필 등 전 장르를 망라하고 있으며 순수 문학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젊은 문인들을 활발히 영입, 순수 문학 위주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고 있다. 회장 김재용씨를 비롯, 회원은 11명. 동인지로 『청호 문학』을 내고있다.
1983년 젊은 시인들로 구성된 「시울 문학회」는 『문학이란 소수의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골이나 공장·학교·시장 등 그 어디서나 훌륭히 자랄 수 있다』며 민중 문학을 지향하고 있다. 회장 김주완씨를 비롯, 회원은 12명이며 회지와 동인 신작 시집을 간행하고 있다.
한편 김형만·정경희씨 등 젊은 시인·소설가 10여명은 본격 민중 문학을 지향하는 「목포 청년 문학회」를 9월중 결성하려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1962년 발족된 목포 문인 협회는 문학 강연·백일장·시화전·문학 심포지엄 등의 행사를 통해 목포 시민들에게 문학에의 열정을 불어넣고 있다. 특히 중소도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86년도부터 「목포 문학 신인 문학상」 제도를 채택, 자체적으로 신인을 배출하고 있어 목포 문단의 자존심을 읽게 한다.
또 83년 향토 거주 및 출향 시인 선집인 『목포시』를 발간하기 시작, 지금까지 5집을 내며 문향으로서의 목포를 과시하고 있다.
목포 문협은 이를 좀더 확대해 전국의 기성·신인을 불구, 전 장르에 걸쳐 목포를 주제로 한 작품을 공모, 시상함으로써 문향으로서의 목포 이미지를 확고히 할 계획이다.
그러나 문향으로서의, 이미 저가 진보적인 문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계도 지니고 있다. 오랜 동인활동을 통한 인맥 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적 젊은 문인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는 것이다.
『불타 쓰러지는 바다를/보았는가. 절벽 같은 어둠으로/질펀히 누워있는 바다를 보았는가. 그대/눈만 뜨면 막막한 절망의 바다가/아침을 열고/서해바다는 늘 패배의 황혼으로/젖어있는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달빛 뒤에서 비수를 품고/음흉한 미소를 띠며/자유의 꿈도 노략질하는/곳곳에 총검의 그림자가 하늘을/찌르는 이 우울한 시대가 침몰하기 전/나는 이곳을 떠날 수 없습니다.』(김정숙『목포시편1 』중)
일제시대 소위 삼백이라 불리는 쌀·소금·면화의 수탈 현장이었던 목포.
그러한 수탈의 역사와 수려한 풍광을 큰 눈뜨고 바라보며 목포의 자존으로 남기 위해 목포문학은 문향의 권위에 굳지 말고 쉼 없이 출렁이는 파도가 돼야할 것이다.【목포=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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