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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내생각은…

파리는 지성, 도쿄는 청결성 서울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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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오세훈 시장님.

봄이면 푸른 새싹이 목멱(木覓)에 생기를 불어넣고, 여름이면 울창한 녹음과 북악 물소리 어우러지며, 가을은 청명 하늘에 홍릉 황금물결 불타는 단풍이 깊어가고, 겨울 인왕에 쌓인 흰눈이 마음을 정갈케 하는 곳. 사계절 자연에 흠뻑 취하는 서울입니다. 민족마다 그들 마음을 뭉쳐주는 상징 도시가 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예루살렘, 스코틀랜드인에게는 에든버러, 우크라이나인에게는 키예프가 있듯이 서울은 한민족의 문화유산이고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일제가 남대문.동대문 성곽을 헐어버리고 덕수궁을 억누르려 시청을 세우고, 여기에 프라자호텔까지 한몫 거들었습니다. 이제 창덕궁.종묘까지 고층 건물로 덮여가고, 북촌마저 시멘트 건물이 뒤섞여 버렸습니다. 박은식.주시경.최남선 등이 문화구국을 주창하며 3.1 독립선언서를 모의 기초한 장통교 조선광문회, 헤이그에서 조선독립을 외친 관수교 이준 열사 기념소, 4.19혁명 촉발 지점 배오개다리 고대생 습격터, 6.25 포화 속 난전 친 천변 둑 오관수교. 이런 역사현장은 자취도 없고 베를린 장벽 일부 뜯어다 놓고, 올덴버그 '스프링'을 청계천 상징 조형물로 입구에 우뚝 세웠습니다. 서울의 품격과 멋이 사라지고 뉴욕의 변두리가 돼 가는 것만 같습니다.

오세훈 시장님.

세계의 위대한 도시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인공이 있습니다. 런던이 1666년 대화재로 잿더미가 되었을 때 도시 계획가 크리스토퍼 렌이 오늘날 런던의 뼈대를 만들었고, 나폴레옹 3세 치하 파리시장 오스망이 오늘날 파리의 얼개를 짰습니다. 뉴욕에는 맨해튼 빈촌 100만 평 땅을 매입해 센트럴 파크를 만든 옴스테드가 있었고, 관동대지진으로 잿더미가 된 도쿄를 지금의 도쿄로 만든 고토 신페이가 있었습니다. 서울처럼 아름다운 도시가 또 어디 있습니까. 한 시간 내에 등산을 즐길 수 있고 30년간 보존해온 그린벨트가 둘러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서울생활은 어떻습니까. 성숙한 시민사회의 윤리의식이 너무 부족합니다. 파리의 지성도, 런던의 도덕성도, 뉴욕의 진취성도, 도쿄의 청결성도 없습니다. 이를 뒷받침할 문화적 긍지마저 부족합니다. 시정자들 또한 임기 내 전시효과를 앞세운 마구잡이개발에 연연했습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듯, 가우디가 1883년 착공한 바르셀로나 파밀리아성당은 지금도 계속 짓고 있습니다.

오세훈 시장님.

영조는 청계천 준설 시행까지 무려 8년을 고민하면서 천변에 나가 백성의 의견까지 듣고 존중했습니다. 한강 프로젝트에 앞서 사라져가는 서울의 역사성과 고유성을 살려내는 것이 더 시급합니다. 가장 서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임을 재발견해 주십시오. 파리.로마.런던.교토에 버금가는, 꼭 가보고 싶은 국제적 명소가 돼야 합니다. 제이콥스는 '도시와 국부'에서 '한 시대, 한 나라의 번영은 그것을 이끈 위대한 도시가 존재함으로써 이룩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도시는 국부의 원천, 민족의 표상입니다. 우리에게는 서울을 세계에 자랑할 위대한 민족문화 유산으로 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