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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달러로 아시아 스포츠 “10년 세도”/급서한 파드 OCA회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사바국왕의 막내동생… 직함 수두룩/서울올림픽 유치과정서 도움
○…이라크의 침공으로 궁성을 지키다 사망한 쿠웨이트의 셰이크 파드 OCA회장(45)은 70년대말부터 아랍 산유국 세력을 등에 업고 아시아 스포츠계를 장악해온 거물 체육인.
파드회장은 79년 4월 푸에르토리코 산후안에서 열린 ANOC(세계올림픽연합회) 총회에서 ANOC의 아시아지역 부회장으로 출마,고 박종규씨를 10­9 한표 차로 물리쳐 당선되면서 아시아 스포츠계에 부각되기 시작했다.
당초 친북한 성향을 보였으나 81년 서울올림픽 유치과정에서 일본과의 경쟁때 한국을 적극 지지하면서부터 친한파가 되어 서울아시안게임 개최도 지지하는 등 이후 여섯차례나 한국을 방문했다. 특히 쿠웨이트 축구협회장인 파드회장은 FIFA(국제축구연맹) 아시아지역 집행위원을 겸하면서 오일달러를 배경으로 태국과 말레이시아등 동남아 중심의 아시아축구 판도를 80년대 들어 중동으로 옮겨놓은 장본인이다.
다혈질에다 명예욕이 강한 파드회장은 IOC 위원을 비롯,NOC 위원장ㆍ아시아핸드볼연맹 회장 등 수많은 체육관계 직함을 갖고 있다. 에피소드도 많아 82년 스페인 월드컵축구대회에서는 본선에 첫 출전한 쿠웨이트의 단장으로 참가,「심판 매수를 위한 것」이란 소문을 낳은 현금 수백만달러가 든 가방을 잃어버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을 방문할 때도 하룻밤 1백만원이 넘은 호텔신라ㆍ롯데호텔 등의 특실을 사용하곤 했다. 자베르 알 아마드 알 사바국왕의 7형제중 막내인 파드회장은 슬하에 5남1녀.<이민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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