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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독성 강한 죽음의 물|한해 80억 톤이 쏟아져 나온다|산업 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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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각종 공장과 산업장에서 쏟아지는 산업 폐수가 전국 곳곳의 하천과 강·바다를 크게 오염시키고 있다.
우리 경제가 성장한 만큼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산업 폐수는 생활 하수와 함께 하천·강바닥을 썩어 들게 해 원상 회복에만 20년 이상 걸릴 정도로 오염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일부 지역의 논을 「불모의 땅」으로 전락시키고 피조개·홍합 등 양식패류의 집단 폐사와 물고기의 떼죽음을 몰고 와 농·어민들의 주름살을 깊게 하고 있다.
최근엔 식탁에서까지 공해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공해 주범 중 하나가 바로 산업 폐수다. 산업 폐수에 섞여 나오는 카드뮴·납·구리·아연 등 각종 중금속으로 쌀·어패류·물고기 등이 오염되고 있기 때문.

<원상 회복에 20년>
특히 장마철이면 단속의 눈길을 피해 산업 폐수를 무단 방류하는 사례가 적지 않아 강물을 용수로 끌어쓰는 농민들이 산업 폐수의 독성으로 살갗에 물집과 붉은 반점이 생기는 등 고약한 피부병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이처럼 삶의 터전을 위협하고 건강을 알게 모르게 해치고 있는 산업 폐수는 수질 오염의 비중에 있어 가정에서 버리는 생활 하수의 절반에도 채 못 미친다. 생활 하수가 수질 오염 원인의 약 70%를 차지하는데 비해 산업 폐수는 약 30%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산업 폐수에 보다 더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은 중금속 등 유해 물질을 훨씬 많이 함유하고 있는 데다 농도도 엄청나게 높은 까닭에서다.
산업 폐수는 89년 현재 전국의 1만1천2백3개 공장 등 업소에서 하루에만도 6백49만7천t이나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80년의 산업 폐수 배출량 (하루 1백96만2천t)보다 무려 3·3배나 늘어난 양이다.
우리 경제의 몸집이 국민총생산 (GNP)기준으로 볼 때 6백억 달러에서 2천억 달러 이상으로 커진 만큼이나 산업 폐수의 배출량도 이렇듯 늘어났다.
연세대 정창영 교수 (거시 경제학)는 『경제 성장 1%에는 각종 오염과 공해가 0·6%정도 뒤따르는 것으로 추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경제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환경 오염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가속화했음을 산업 폐수 배출량의 증가 속도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1년에 3백억t에 육박하는 양이 발생하는 산업 폐수가 모두 하천·강·바다 등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의 경우 발생한 폐수 중 75%는 다시 공장 가동에 쓰이고 나머지 약 25%가 실제 방류됐다.
이들 산업 폐수는 모두 적정 폐수처리 장치를 거쳐 나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데 문제가 있다.
지난 7월20일 암을 일으키는 물질인 형광 음료와 중금속 허용치를 50배 이상 초과한 폐수를 한강에 몰래 흘러 보내다 검찰에 적발돼 6명의 공장 주인들이 구속된 사건은 무단 방류의 심각성을 엿보게 한다. 이들 공장들은 모두 무허가이고 전국에 깔려 있는 이른바 「도시형 공장」들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산업 폐수 중 90%가 대기업에서 쏟아내 이들 무허가 도시형 공장의 폐수 배출량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보았듯이 농도도 높고 유해한 물질이 섞인 폐수를 마구 방류한다는 점에서 수질 오염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이같은 도시형 공장을 비롯한 가두리 양식장, 하천 옆의 소규모 대중 음식점 등에 대한 규제와 단속 강화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김인환 환경처 수질 보전 국장은 『이들 오염원은 그 영향의 정도를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힘드나 모두 합치면 그 비중이 상당히 크다』고 밝히고『앞으로 이에 대해서도 철저히 제도
적인 규제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버젓이 허가를 내 폐수 처리 장치를 갖추고도 이를 제대로 가동하지 않은 기업·공장들도 상당히 많다.

<90%가 대기업서>
올 1∼5월 환경처와 각 시·도가 공해 배출 업소 4천1백20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단속에서 13% (5백53개 업소)가 처리 장치를 제대로 가동치 않거나 무단 방류하다 적발됐다. 최근 2∼3년 사이 당국의 단속 등으로 기업들의 공해 방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도 눈가림하는 경우가 허다한 사실을 단속 결과로 알 수 있다.
단속 업무를 맡고 있는 김덕치 서울 지방 환경청 지도과장은 『무단 방류의 유형은 세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즉 ▲한낮에 단속 공무원의 눈을 피해 폐수 처리장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폐수를 내보내거나 ▲야밤을 틈타 동력기를 이용, 호스로 폐수를 하수구로 뽑아내며 ▲관을 땅속에 교묘하게 묻고 그 조절 장치를 자신들만 알게 만들어놓은 뒤 때를 가리지 낳고 무단 방류하는 방법 등이다.
단속반들은 특히 비밀 배출구를 찾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나 일손이 달려 적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김 과장은 시인했다.
폐수 배출량 자체의 증가 추세에다 이같은 무단 방류로 우리 국토의 젖줄인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등 주요 강과 그 유역이 죽어가고 있다.
특히 4대강 유역의 19개 지점을 생화학적 산소요구량 (BOD)을 기준으로 평가할 때 1등급으로 남아 있는 곳은 한강·금강의 각 두군데와 낙동강·영산강의 각 한군데 등 모두 여섯군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 2등급 이하로 관리되고 있으며 특히 한강 유역의 가양 부근은 4등급으로 전락했다.
이 지역은 올 들어 5개월간 측정된 BOD가 5·6PPM으로 낙동강의 안동 부근 (0·9PPM)보다 무려 여섯배 이상이나 오염돼 있다.
또 공장 배수 지역의 하천은 그야말로 시궁창으로 옛날처럼 빨래를 한다든지 멱을 감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공단 지역의 하천 중 전국에서 가장 오염도가 심한 곳은 인천 4공단으로 BOD가 3백30PPM에 달한다. 이같은 오염도는 상대적으로 덜 오염돼 있는 전북 이리 공단 (약 47PPM)보다 일곱배 이상 높은 것이다.
이밖에도 반월 공단 (4백87PPM·대구 공단 (1백86PPM)이 크게 오염돼 있고 울산·청주가 뒤따르고 있는 형편이다.

<야밤 틈타 슬며시>
강과 공단 지역의 하천 이외에 오염의 확산에 신경써야 할 곳은 「자원의 보고」로 일컬어지는 바다. 그러나 아직까지 바다 오염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어 국민들과 관계당국의 인식 변화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정갈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산업 폐수의 바다 연안 유입은 조개·물고기 등 어패류의 중금속 오염을 초래, 이미 여천·온산공단의 연안에서는 어패류 외에 미역 등 해조류가 수은·카드뮴에 오염되고 있는데도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산업 폐수와 생활 하수에는 너무 무관심하다』고 했다.
최근 인천 월미도 앞 바다에서와 같은 유조선 충돌 사고에 의한 기름 유출이나 선박에서 쏟아내는 폐유·폐수도 바다를 오염시키는 요인이지만 더 심각한 것은 산업 폐수와 생활하수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유철상 환경처 해양 보전 과장은 『산업 폐수와 생활 하수가 바다의 오염 원인 중 88%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바다 오염 예방을 위해 산업 폐수의 단속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폐수의 발생량에 있어서는 포철 등 1차 금속업에서 전체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으나 실제 하천에 내보내는 폐수 방류량을 보면 섬유 업종이 단연 많다.
전체 산업 폐수 배출업소 1만1천2백3개 (89년3월 현재) 중 6·4%에 불과한 섬유 업종 7백18개소가 총 폐수 방류량의 약 23%를 쏟아내고 있다. 종이·담배업 (15·4%), 식료품업 (11·5%)이 그 뒤를 쫓고 있으며 1차 금속업의 경우엔 10·4%선에 그치고 있다.

<섬유 업종이 많아>
1차 금속업의 폐수 방류량이 발생량에 비해 훨씬 적은 것은 이 업종은 폐수를 재 이용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중금속과 페놀·PCB 등 특정유해 물질이 섞인 산업 폐수는 배출량 중 5분의1이상인 긴217%가 경기 지방에서 배출되고 경남 (18·7%), 경북 (15%), 전남 (14·2%)에서도 다른 지역보다 훨씬 많은 특정 유해 물질을 함유한 산업 폐수가 발생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립 환경 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13개 지역의 도시·어촌·농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혈액·소변·머리카락의 중금속을 잰 결과 카드뮴의 경우 미국 권고치의 25배까지 검출돼 충격을 주었다. 유명한 공해 사건인 일본의 「이타이이타이병」 사례가 국내에서 발생치 않으리라고 속단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또 이 조사에서는 임산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납과 아연·구리의 오염도도 상상이상으로 높게 나왔다.
환경 전문가들은 이제 경제 성장 못지 않게 환경 보전에 적극 관심을 기울여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을 택해야 할 때가 됐다고 강조하고 있다.
더 이상 수질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대기업에 대한 단속과 배출 부과금 징수를 강화함은 물론, 오염 물질 정화 처리 의무를 제대로 이행토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해 방지 시설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환경 관리 기금의 융자액 한도를 높이고 수혜 대상을 넓혀나가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의식과 환경 보전에 대한 올바른 자세를 기업주들이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뿐인 지구, 그리고 우리 국토를 보전해야겠다는 의식이 없는 한 무단 방류 등 각종 환경사범이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 김영섭 기자 사진 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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