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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두우칼럼

세 번의 기회 놓친 고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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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는 현 정권의 초대 총리로, 노 대통령 탄핵 시 두 달 동안 대통령 직무대행을 맡아 나라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노 대통령의 불안정성이 부각될수록 고 전 총리의 인기는 올라갔다. 2004년 하반기부터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로 부상했다. 올 들어 그런 고 전 총리의 지지율이 서서히 낮아지더니 이제는 3위로 떨어졌다.

왜 그럴까. 기회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기회는 지방선거 전후에 있었다. 선거 직전 여당이 강현욱 전북지사를 공천하지 않기로 했을 때다. 그를 만난 고 전 총리는 끝내 지원 확답을 주지 않았다. 강 전 지사는 결국 출마를 포기했다. 고 전 총리를 보좌했던 한 인사는 "강씨를 밀었다면 당선됐을 것이고, 호남의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선거 직후 정계재편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기회도 타이밍을 잘못 잡아 놓쳤다. 그는 5.31 지방선거 바로 다음날 "7월 중 국민운동 성격의 연대모임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고 공황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자신의 우산 아래 '헤쳐 모여' 하기를 기대했다면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깃발을 높이 들어야 했다. 그랬다면 여당은 붕괴됐을지 모른다. 이 모임은 몇 차례 연기되다가 8월 말 '희망연대'로 모습을 드러냈지만 제대로 주목조차 받지 못했다.

7.26 재.보선은 정치적 파워를 보여줄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그는 서울 성북을 출마 권유를 거부했다. 그가 나섰다면 성북을 선거는 고 전 총리와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의 대결로 압축됐을 것이다. 탄핵 정국에서 나라를 안정적으로 관리했던 인물과 탄핵 주역의 대결, 여당과 제1야당의 후보는 보이지 않고 제3당인 민주당과 무소속 후보가 부각되는 선거가 됐을 것이다. 그랬다면 탄핵의 찬성자와 반대자,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은 물론 수도권 주민들조차 누구를 지지할지 토론하고 고민했을 것이다. 엄청난 심정적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지지율이 거품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임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그는 정치 지도자로 우뚝 설 기회를 놓쳐 버렸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조성된 한반도의 위기는 그에게 또 한 번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핵실험 당일인 9일 그는 북한의 '폭거'를 규탄하면서 '대북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주장했다. 그런데 10일 이후 고 전 총리는 발언을 삼가고 있다. 묘하게도 DJ가 '햇볕정책'의 적극 방어에 나선 게 10일부터다. 13일 북핵 관련 워크숍의 고 전 총리 발언도 공개되지 않았다. 호남과 '친북 진보'의 표가 달아날까 염려한 때문일까. 아니,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아닐까.

DJ를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호남의 대표주자가 될 수 없다. 아류(亞流)는 결코 본류(本流)를 넘어서지 못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면 결코 정치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지도력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선뜻 그에게 몰려가지 않고, 지지율도 점차 떨어지는 이유가 뭔지 고 전 총리는 돌이켜봐야 한다. 대통령은 수시로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다. 북핵 위기 상황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고 전 총리가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의 결단력을 보여주세요."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