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ㆍ수ㆍ축협 민선회장 100일 성적표/민주화 걸맞은 자율운영 멀다

◎선거후유증ㆍ내부 부정등 허점 많아/농어민 이익 대변 과거보다 적극적/과도기 현상 극복할 보완책 절실
농어민의 권익보호단체인 농ㆍ수ㆍ축협에 민선회장이 등장한지 1백일을 넘어섰다.
민주화 시대의 농어민 이익을 명실상부하게 대변하기 위해 지난 4월 중앙회장 및 조합장을 직접 선출,민선체제로 재출발한 이들 조합은 그러나 지난 1백여일의 성적표가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해 관계자들의 표정이 밝지 못하다.
홍종문 수협회장이 선거법위반혐의로 구속되면서 농ㆍ수ㆍ축협 모든 선거의 도덕성이 의심을 받았고 잇따라 축협에서 일어난 부정대출등 금융사고,그리고 수입쇠고기 부정유출사건 발생으로 일부 간부사원이 수사기관에 잡혀가는 등 내부관리의 허점을 드러냈다.
또 모양새는 민선체제를 갖추었으나 업무는 예전과 다름없이 정부의 위촉 또는 대행사업이 대부분이어서 회장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 실제내용은 과거와 다름없는 이중구조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수협은 홍회장이 지난 23일밤 사표를 제출,선거법 위반사건은 표면상 일단락되었으나 한달 이내에 재선거를 치러야하는 등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물론 민선회장들의 그동안 노력은 과거와 남다른 바가 적지 않았다.
관선회장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선거권자인 조합원들을 수시로 만나고 이들의 요구에 다소 무리가 있다 하더라도 농어민을 위한 시책이라면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농협이 배합사료 및 농기자재의 부가가치세 면제를 즉시 시행토록 주장했다가 정부 관계 부처와 마찰을 빚었고 축협은 물가안정시책의 일환으로 돼지고기를 수입하려는 정부에 강력 반대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심지어 홍종문 수협회장은 선거법 위반사건으로 구속되기 전에 수협이 「독립 자주단체」임을 입증하려는듯 업무브리핑을 거부하다 초도순시를 나온 강보성농림수산부장관과 얼굴을 붉히는 사태를 자초했다.
그러나 정부의 보조를 받거나 또는 위탁사업에 매달리는 민선회장들의 행동반경은 그리 넓은 편이 못됐다.
조합업무는 신용사업ㆍ경제사업ㆍ지도사업 등 크게 세가지로 분류되지만 비료ㆍ농약ㆍ농기계의 구매 공급과 양곡수매 및 보관업무를 취급하는 경제사업이나 영농기술 및 경영지도를 하는 지도사업은 정부의 지원 및 보조없이는 불가능하다.
또 예금ㆍ대출 등 일반은행과 같은 업무인 신용사업도 사실상 정부특혜가 적지 않다.
정부청사에 농협은행이 우선 입주하고 지방자치단체의 공과금 및 각종 기금은 농협이 우선 예치를 받아왔다.
이들 조합들은 이익이 많이 남는 신용사업에 치중하는 한편 특히 농협은 여행업ㆍ무역업 등에 다각적으로 진출,자립기반을 다지고 있으나 공익기관이 너무 이익에 매달린다는 여론의 비난과 함께 업종다각화 실적도 아직은 미미한 상태.
그러나 조합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내부관리가 허술해 졌다는 점이다.
「민주화」에 너무 충실,짧은 기간에 지방단위조합까지 조합장을 직선으로 뽑다보니 신용사업과같은 전문적인 일을 비전문가가 감독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금융사고나 수입쇠고기 부정유출 사건 등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농업전문가들은 『이제까지 전혀 해본 적이 없던 직선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면서 『차제에 직선제에 맞는 농어민 조직을 재편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정치적 조직과 경영체적 조직을 분리,정치적 조직은 농어민이 자율적으로 참여,회비제로 운영되는 다양한 이익집단으로 만들고 농ㆍ수ㆍ축협은 순수하게 경영사업만을 전담하는 조직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또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은 분리,각각 전문가들이 맡도록하고 민선회장은 이를 총괄,신용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경제사업에 투자하도록 교통정리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ㆍ수ㆍ축협의 민선회장제도에 문제가 있으므로 이를 옛날로 되돌려야 한다는 일부의 주장은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다. 갓 출발한 3개 조합에 다소의 문제점이 나타나긴 하나 정부와 관련기관들이 과도기적 현상을 치유할 수 있는 보조대책이 불가피한 실정이다.<한종범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