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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남북 범민족대회 서울 예비회담(뉴스파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한불참…「반쪽회담」으로 허탈/이틀간 「촌극」… 3차회담도 불투명/끝내 안될땐 당국ㆍ전민련 부담 클 듯
통일의 기대로 실날같은 희망을 걸었던 범민족대회 서울예비회의가 북한측의 참가문제로 장마전선처럼 오락가락하다가 끝내 북한측의 거부로 재야대표단과 해외동포대표단만으로 뚜렷한 성과없이 막을 내려 국민들에게 허탈과 실망ㆍ분노 만을 안겨주는 한 주였다.
정부는 24일 범민족대회 제2차 예비회의(26일)의 북한대표 참석과 편의제공보장을 요청한 전민련의 북한주민접촉신청을 전격적으로 허용했다.
북한도 이날 예비회의 대표 5명의 파견의사를 그들의 방송을 통해 밝혀왔다.
이에 따라 전민련도 8ㆍ15 범민족대회와 관련해 정부와 보조를 맞추기로 결정,김구선생 이후 최초로 민간급 남북대화가 눈앞으로 다가와 국민들은 민족대교류의 첫장을 여는 계기로 보고 기대와 설렘으로 잠을 설쳤다.
그러나 남북 양측은 판문점에서 26,27일 이틀간의 「촌극」끝에 극히 지엽적인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결국 대사를 그르치고 말았다.
이번 회담이 「반쪽회담」이 된 것은 회담장소와 숙소ㆍ경호 등을 둘러싼 정부와 전민련ㆍ북측대표사이의 이견때문이었다.
남북양측은 회담일로 예정된 26일 오전 7시30분부터 양쪽 제1차 연락관접촉을 시도,의전문제를 논의한 끝에 숙소ㆍ회담장소는 인터컨티넨탈호텔로 하고 차량도 우리 정부측이 제공한 것을 이용하기로 하는 등 8개항에 쉽게 합의해 예비회의가 순조롭게 열리는 듯 했다.
그러나 전민련측이 정부의 일방적인 장소변경에 항의,당초 자신들이 정한 아카데미하우스를 고집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측은 낮12시부터 입장을 돌변,회담장소와 숙소ㆍ경호문제등의 변경을 이유로 입경을 거부했다.
26일 오전 평양을 떠나 판문점까지 왔던 북한측 대표단은 회담장소등의 문제로 우리정부측과 전민련측이 맞서고 있음을 겨냥,정부가 회담장소를 당초 전민련측에서 정한 서울 수유동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로 옮긴 것을 물고 늘어졌다.
또 차량지원ㆍ경호문제등도 전민련측에 일임할 것을 고집했다.
결국 북측은 이번에도 그들의 상투적인 수법으로 정부와 전민련사이의 불협화음을 빌미로 회담거부의 명분을 찾아낸후 되돌아 섰다.
이같은 우여곡절끝에 이 회담은 27일 오전10시부터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북측대표단이 불참한 가운데 재야단체대표 6명과 해외동포대표 6명만이 참석,삼자아닌 이자회담을 열었으나 지난 6월 서베를린의 제1차회의(전민련불참)에서 논의된 대회의 목적ㆍ참가규모ㆍ일정ㆍ장소ㆍ행사내용등 구체적이고 전반적인 사항을 재확인ㆍ조정하지 못한채 제3차 예비회의를 8월6일 평양에서 개최키로만 합의한후 폐막됐다.
결국 북한은 남한 여론이 전민련뿐만 아니라 우익도 참여한다는데 동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에 내려가 전민련만 범민족대회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자칫 여론의 역풍을 맞을바에야 가지않을 구실을 남한정부와 전민련간의 갈등에 미루고 빠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계산을 했을 것으로 북한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재야에서는 『이번 회담의 북측대표 참가거부로 가장 큰 부담을 안아야할 당사자는 우리정부』라고 주장했다.
전민련등 재야인사들은 『회담준비과정에서 정부는 일관성없는 태도를 보여 7ㆍ20선언을 희석시켰을 뿐만 아니라 하루전 일방적으로 회담장소 등을 변경하는등 정부정책의 무계획성을 그대로 드러냈다』며 『앞으로 7ㆍ20선언을 구체화시키기 위해 정부는 좀더 성실한 정책수립을 해야하는 부담을 안게됐다』고 지적했다.
재야의 한 인사는 『전민련 또한 회담추진과정에서 정부측에 보여준 유화적 태도등 때문에 전대협등에서 반발이 예상되므로 범민족대회를 성사시키지 못할 경우 커다란 시련에 직면할 것』이라며 『어떠한 걸림돌이라도 딛고 넘어 범민족대회를 성사시켜 이 대회가 통일의 실마리를 찾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김국후 사회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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