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상인들, 포장마차 뺏고 뺏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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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걷어버려."

27일 오후 8시40분 서울 종로3가 종묘공원 앞. 테이블을 7~8개 갖춘 대형 포장마차 앞에 20여명의 청장년이 들이닥쳐 소리를 질렀다.

'단속반원'이란 글이 새겨진 감색 작업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서울 종로구청의 의뢰를 받은 포장마차 철거반원들. 순식간에 음식을 끓이는 화로를 길바닥에 내려놓고 조리대를 트럭 위에 실었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대여섯명의 손님이 쳐다보는 가운데 주인의 욕설이 터져나왔다. "야 이 개××들아, 왜 남의 밥줄을 끊느냐."

하지만 반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지붕을 이루는 포장을 둘둘 말아 트럭에 실었다.

주인들이 의자를 집어던지며 단속반원들과 심한 몸싸움을 벌여 이 일대는 한동안 수라장이 됐다. 이 부근 포장마차 다섯 곳이 순식간에 철거됐다. 하지만 이중 포장마차 두 대분의 설비는 노점상연합회 측과 포장마차 주인들이 합세해 도로 탈취해 갔다.

서울 도심에서 대형 포장마차와 관할 구청 사이에 전쟁이 한창이다.

강남.종로구의 경우 도로나 인도를 무단 점거한 채 30명 이상의 손님을 받을 수 있는 대형(기업형) 포장마차가 흔히 눈에 띈다. 이들은 따로 종업원까지 두고 월 1천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서울시와 각 자치구는 시민의 통행에 불편을 주는 기업형은 지난달부터 단속반원을 대거 투입해 단속하고 있다. 서민 생계형 소규모 업소는 단속에서 일단 제외한다.

현재 서울의 노점상은 모두 1만5천8백여명으로 이중 기업형은 2천3백여 곳에 이른다. 중구 롯데백화점 주변과 강남구 테헤란로 일대에는 횟감용 수족관까지 설치하고 여종업원을 고용한 곳도 적지 않다.

특히 테헤란로의 경우 대형 노점상 1백40여곳 가운데 20~30곳은 하루 매상이 수백만원대인 기업형 포장마차다. 차량에 길이 6m가량의 접이식 천막을 장착, 한꺼번에 수십명의 손님을 처리한다. 인근 유흥업소에서 1차 술자리를 마친 취객이 주 고객. 이곳에 단골로 들르는 유명 연예인의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목이 좋은 곳은 권리금만 1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강남구청 측은 "테헤란로 벤처기업에 해외 바이어들이 많이 오는데, 미관상 좋지 않다는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경비 용역업체와 10억여원에 계약을 하고 인력 60명을 지원받아 단속하고 있다"고 밝혔다.

단속 강도가 높아지자 노점상들도 맞서기 시작했다.

노점상들은 "인도의 보도블록을 50m씩 뜯어내며 무자비한 철거 작업에 들어간 것은 상인들의 생존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지난 1일부터 강남구청에 몰려가 연일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구청 측은 강남구민 2만여명에게 e-메일을 보내 설문조사한 결과 80% 정도가 "철거에 찬성한다"고 응답했다고 발표했다. 노점상들은 이에 대해 '여론몰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구청 측은 "영세 노점상에게는 6개월 취업교육과 60만원의 생계비를 보조해 주겠지만 불법적인 인도 점거는 끝까지 단속하겠다"고 말했다.

양영유.이철재 기자

<사진설명전문>
27일 밤 서울 종로3가에서 종로구청 단속반이 트럭에 실어놓은 포장마차 설비들을 노점상연합회와 포장마차 업주들이 합세해 도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날 단속반과 포장마차 업주 사이에는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박종근 기자<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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