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짝도 다가서지않다니”/썰렁한임진각…북 끝내안넘어오자 시민허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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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기다리다 지친 전민련은 정부비난
26일 「범민족대회」 2차예비회담이 북측대표의 불참으로 무산되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던 우리측대표와 시민들은 27일 북측대표들의 다시 오겠다는 소식에 또 한차례 기대를 걸었으나 북측대표들은 이날도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임진각에서 북측대표들을 기다리던 전민련환영단은 허탈감에 빠졌고 예비회담성사를 기대하던 시민들은 『만나는 것 자체가 이렇게 힘들수 있느냐』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임진각=북한이 27일 오전9시 판문점 북측지역으로 범민족대회 제2차 예비실무회담대표 5명을 다시 보내기로 방송함에 따라 남측 추진본부는 이날 오전7시20분쯤 강희남전민련고문 등 환영단 18명이 전세버스편으로 임진각에 도착했으나 26일에 이어 또 무산되자 다시 허탈한 분위기.
이날 임진각은 전날 1백여명의 환영단이 북한대표를 마중나와 남북대화에 대해 들떠있던 분위기와는 달리 27일 오전에는 제2차접촉도 결렬될 것으로 예상한듯 전민련간부 등만이 나와 썰렁했다.
환영단은 특히 북한측대표의 판문점 도착여부를 확인하기위해 통일원측에 새벽부터 다섯차례에 걸쳐 전화접촉을 시도했으나 통일원측이 아무런 해명이나 조치를 취하지 않아 몹시 답답해 하는 표정이었다.
이창복 전민련상임의장은 이날도 북측참가무산이 확실시되자 오전9시40분쯤 임진각1층 식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한측 대표를 맞이하기 위해 오전4시부터 통일원측에 성의있는 주선을 요청했으나 통일원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회담이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이번 예비회담결렬에 대한 전적인 책임은 남북교류 문호개방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정부측에 있다』고 비난했다.
이의장은 그러나 『북한측 대표를 영접할수 있을때까지 임진각에서 계속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전민련은 이에앞서 오전4시10분,6시 등 다섯차례에 걸쳐 통일원 제2교류 협력관실과 전화접촉을 시도,북한측 대표단 파견과 관련해 정부측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으나 『어려운 일』이라는 부정적 답변을 들었다.
통일원은 ▲북한측 발표가 연락관을 통한 정식 통로가 아닌 일방적 성명형식이고 ▲남북접촉신청은 24시간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절차상의 문제 등을 들어 협조에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향민단체=민족통일협의회 한양수사무총장을 대표로 이재운변호사 등 6명으로 구성된 범민족대회참가를 위한 58개 사회단체실행위원회는 27일 오전11시 서울 논현동 민자통중앙회 사무실에서 모임을 갖고 범민족대회와 관련한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이날 모임에서 예비회담이 무산될 경우 북측이 일방적으로 대회를 강행하게 될 「8ㆍ15」를 전후해 한라산에서 판문점까지 국토종단행진을 갖고 문호개방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1천만이산가족대회 추진위원회 조동영사무총장은 『사소한 절차문제로 범민족대회 예비회담이 교착되고 있는데 대해 실망을 금할수 없다』며 『북한이 대한민국의 내부분열을 조장키위해 이번회담을 역이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시민반응=실향민 신옥화씨(62ㆍ여)는 『북한측이 정부가 회담장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7천만 겨레의 통일염원을 저버리고 회담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북한이 통일에 진지한 뜻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신씨는 『통일을 위해 한걸음 내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왔는데 이처럼 사소한 문제로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수 없다』며 『남북이 동ㆍ서독처럼 진지한 자세로 회담에 임할 것을 다시한번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회사원 박찬현씨(36ㆍ한진해운과장)는 『범민족대회예비회담이 실질적으로 남북교류로 가는 중요한 계기로 생각해 큰 기대를 갖고 지켜봤는데 걸렬됐다니 매우 실망스럽다』면서 『이러한 결과는 우려했던대로 북한이 선전효과만을 노린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반쪽회담」에 맥빠져/기자들도 절반으로
◇아카데미하우스=당초회담장소로 지정돼 1백여명의 취재진으로 붐볐던 이곳은 북측대표의 불참이 알려진 뒤 취재단 숫자도 반으로 줄었고 회담참가자들도 실망한 표정들이 역력했다.
회담대표들은 예약된 10개의 방을 사용했으며 이들이 묵는 객실에는 안내명찰을 단 주최측 청년들이 지키고 서 기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회담대표들은 예비토론으로 철야해서인지 약간 피곤한 표정들이었으며 기자들에게 『북측이 내려올 것 같으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곳에는 전날 도착한 KS콘크리트진동협회 회원 1백50여명이 2박3일의 일정으로 세미나를 열고 있었으나 거의 모든 시간을 본 건물과 떨어진 별관에서 보내 큰 혼잡은 없었다.
그러나 27일 오후1시부터 회의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한천실과 기자실로 사용되고 있는 불암실이 모두 약혼식장으로 예약돼 있어 아카데미하우스측이 비워줄 것을 요구하는 등 혼선.
이날 회담장주변에는 사복경찰과 검찰 등 보안관계당국자 20여명이 기자들에게 대표 등의 동정을 묻기도 했으나 별다른 간섭은 하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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