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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소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①자의든,타의든 군이 정치에 참여했던 「불행한 과거」 ②자질이 모자라고 전문성이 결여된 일부 간부들의 인상 ③각종 부정과 비리 ④구타와 같은 악습의 잔존 ⑤창군초기 무고한 국민의 인명피해와 재산피해.
원문 그대로는 아니지만 대충 이런 뜻으로 우리 군을 비판한 현역 육군소장의 글이 요즘 군기관지에 실려 화제가 되었다.
우선 이런 글을 현역 장군이 서슴없이 집필했다는 사실도 신기하고,또 그것을 군기관지가 서슴없이 받아 실은 것도 뜻밖이다. 게다가 바깥의 일반신문이 그 글을 서슴없이 세상에 알린 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세상의 변화는 이제 군의 높다란 벽도 서슴없이 두드리고 있는 것인가.
우리는 평소 한국의 미군 TV를 보며 『저것이 군 방송인가』하는 인상을 가질 때가 적지 않다. 코미디언들이 자기 나라 대통령 흉내를 내며 시시덕거리는 것은 예사고,월남전 당시 격렬한 반전데모나 반전주장들도 군 방송은 상업방송과 조금도 다름없이 충실하게 방영하고 있었다. 월남전을 총지휘하는 웨스트모얼랜드장군을 비난하는 내용도 물론 빼놓지 않았다.
미국의 아이젠하워대통령은 8년의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는 고별기자회견에서 미국정부의 당면한 가장 큰 문제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군장군출신이며 국가원수였던 그는 『군산복합체제의 극복이다』는 대답을 했다. 군의 최고 통솔자인 대통령이 군을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오늘 미국군대가 약하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첨단의 무기와 강한 군비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군비는 소련보다 뒤진 분야가 적지 않다는 정보자료도 많다. 그래도 미군이 강하다고 믿는 것은 국민의 감시와 신뢰를 받는 민주군대라는 사실때문이다.
미국이 월남전에서 낭패한 것은 무기가 모자라고,전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국민의 신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군을 비판한 어느 장군의 글을 그 자체보다는 그런 주장을 받아들이는 군내부의 겸허하고 결연한 자세에서 더 큰 의미를 찾게 된다. 군을 강하게 만드는 것은 대포보다도 국민의 신뢰와 애정이라는 것을 우리 군은 결코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것이 더 반갑고 다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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