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는 해서 뭐합네까”(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회의는 해서 뭐 합네까. 아무리 우리가 됴은 데안을 하드라두 남쪽이 어떤 구실이라두 잡아 거뎔할거이 뻔한데 말이외다.』
23일 판문점에서 열린 제 4백56차 군사정전위 본회의장 주변. 회의가 시작되기 10여분전 미리 나와있던 북한측 기자들은 이미 이번 회의의 결과를 예견이라도 한듯 서슴없이 이같은 주장을 폈다.
이윽고 회의개최 시각인 오전11시. 북측과 유엔군측의 대표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상례대로 회의개최를 제의한 북측대표 최의웅소장이 포문을 열었다.
『북남간의 긴장완화와 대화를 위해 우리측은 이미 여러가지 제의들을 해놓고 있습네다. 그러나 귀측은 우리의 이같은 진지한 성의와 노력을 외면하고 군사연습과 무력증강 등을 계속하고 있습네다.』
한소 정상회담이후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서 예상했던대로 최대표는 북측이 주관하는 8ㆍ15범민족대회의 보장을 요구했다. 최대표는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열리는 이 대회의 성사를 위해 남북 및 해외참가자들의 신변안전ㆍ자유로운 활동보장과 함께 8월15일 이전까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의 무장병력ㆍ초소 등 군사시설 철거,콘크리트장벽ㆍ철조망 해체를 위한 공동추진위원회의 설치 등을 즉각 수락하라고 촉구했다.
이에대해 유엔군측도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판문점에서의 무장병력철수 등은 이미 우리가 제의한 바 있는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조치에 포함되므로 계속 논의할 수 있다』며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군사정전위의 논의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실상 북측제의를 거절했다.
회의가 이쯤되자 회의장 밖에서는 남북 기자들 사이에 설전이 오갔다(사진). 북측기자들은 『거 보라』고 했고,남측기자들은 『실현가능한 얘기를 하라』고 맞받았다. 『비정치적 교류부터 시작해야 할게 아니냐』는 우리측 주장에 대해 북측기자들은 『교류를 먼저 하자는 것은 통일할 생각이 없다는 증거』라며 『연방제 통일이 되고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우리측의 민족대교류제의를 받아들일 의사가 전혀 없음을 읽을수 있는,그런 순간이 었다.<판문점=이만훈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