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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경원 개혁에 도움 줄까 서방지원 찬반논란|윌리엄 파프<미 칼럼니스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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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 최대의 병자」소련을 도와줘야 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둬야 하는가. 현재 서방국가들은 파멸적 경제위기에 처해 있는 소련에 대한 경제원조 문제를 놓고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칼럼니스트 윌리엄 파프는 1차 대전 직후 프랑스가 패전국 독일에 대해 가했던「응징」이 그 후 2차 대전을 일으킨 직접 원인이 됐음을 들어 소련에 대한 세계적 지원의 필요성을 강력히 장하고 있는데 반해 미 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의 소련연구전문가 주디 셸튼은 소련에 대한 무계획한 경제원조가 결과적으로 서방국가들이 2억8천만 소련인의 무한정의 후견인이 될 위험성이 있음을 들어 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음은 두 사람의 주장을 요약한 것이다. <편집자 주>
EC가 오는 10월 정상회담에서 소련의 개혁을 지원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기 전까지는 서방측의 대소원조에 대한 논의는 이데올로기적이고 피상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소지원논쟁은 원칙적인 문제뿐 아니라 실용성의 문제와도 관련돼 있다.
대소지원을 반대하는 미국 등의 입장은 원조가 소련이 반드시 겪어야 할 경제구조·산업구조의 대변혁을 지연시키고 고르바초프와 개혁 세력들에게 약간의 시간을 벌어 줄 뿐 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시간인가.
이데올로기적 원조반대자들은 소련이 완전한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확립하고 발트해연안국들, 우크라이나·그루지야공화국 등을 독립시킬 때까지 원조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너무도 요원한 것이므로 이들 원조반대자들은 소련이 붕괴하는 모습을 만족스럽게 지켜보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소련지도자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포기하고 복수정당제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한 원조를 할 어떤 명분이나 이유도 없다고 주장한다.
또 고르바초프가 실패를 거듭하고 소련국민들이 고통받도록 내버려둠으로써「불한당」들을 집어던져 버리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같은 주장은 안이한 독선일 뿐이다. 그러나 역사에는 유사한 사례가 있다. 다름 아니라1918년 1차대전 직후 프랑스가 독일에 가했던 정치적 보복이 그것이다. 프랑스는 독일이 프랑스에 가했단 모든 피해를 일일이 보상토록 함으로써 독일인들에게 굴욕감을 안겨줬다. 그 결과 프랑스가 얻은 것은 1934년 히틀러의 등장이었다.
프랑스 TV의 문화프로그램 전문「채널7」에서는 50년 전 프랑스·영국·독일의 영화관에서 상영된 뉴스필름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 주목을 끄는 것은 1940년 독일의 뉴스필름들이다. 이 뉴스영화를 본 사람들은 내용이 편집 광적 일 정도로 방어적이라고 지적한다.
뉴스에서는 독일의 승리, 유럽지배「천년제국」의 등장을 다루기보다 독일이 프랑스·영국과 유대인 제국주의자들, 금권통치자들, 세계주의자들, 은행가, 독점자본가들에게 포위되어 협박과 사기를 당하는 등 압박 받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마침내 적들은 반격을 받고 패배함으로써 독일이 교훈을 주었다. 그러나 독일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등등.
아무도 이런 뉴스가 독일 군이 전 서유럽과 중부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 대부분 지역을 확고히 장악, 독일의 완전한 승리가 예견되었던 1940년 7월에 상영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도 오늘날의 소련에 이런 심리상태가 형성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원조반대입장은 현실주의적 관점이다.「원조가 소련에 실제로 도움이 될 것인가」.「그저 정부보조금으로 충당되고 말지 않을까」등.
고르바초프는 장기차관을 공 여한 서구국가들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EC는 이 요청을 10월까지 검토하겠다고 약속했으며 미국의 원조반대입장에도 불구하고 많은 EC국가들이 고르바초프의 요청을 들어주고 싶은 눈치다.
소련과 동유럽국가들에 대한 원조를 생각할 때 2차대전후 미국이 유럽국가들에 제공했던 마셜플랜은 교훈적이다. 즉 동유럽국가들 스스로 이니셔티브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마셜플랜은 미국이 유럽인들에게 강요한 원조가 아니라 유럽인들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결정하고 원조가 이에 상응해 제공되도록 한「세련된」계획이었다. 1947년 6월 조지 마셜 미 국무장관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미국의 원조가 적절한 효과를 갖도록 하기 위해 유럽국가들 사이에 자신들이 먼저 해야 할 일, 필요한 여건들에 대해 합의가 있어야 한다.…이일은 유럽인들의 일이다.…이니셔티브는 유럽인들이 가져야 한다. 미국의 역할은 유럽이 계획을 수립하도록 돕고 그 계획이 실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
소련은 원조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를 설명하는 구체적 계획안을 제시해야 한다.
헝가리·체코·폴란드와 발칸반도의 국가들도 1948년 서유럽국가들이 유럽경제 협력기구구성을 통해 했던 것처럼 가신들이 추진하는 개혁의 과제를 추출하고, 그 과제를 달성할 계획안을 제시한다면 미국과 EC로부터 원조에 대해 지금보다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본사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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