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물 먹인「물먹은 쇠고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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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이번에 적발된 경기도 평택시 제일식품(대표 김경정·61)은 5년간 매일 서울시내 하루 쇠고기소비량(1천여 마리)의 7%인 한우와 젖소 70여 마리에 물을 먹여 도살, 서울시내에 반입한 것으로 밝혀져 서울시민의 7%는 그동안 푸석푸석하고 맛없는 쇠고기를 먹어 온 셈이다.
지방에서는 최대규모인 1급 도축장 제일식품의 물 먹인 소 도살수법은 과거 콤프레서나 양수기 등을 이용, 소의 입에 호스를 꽂고 억지로 물을 먹여 온 것과는 달리 죽기 직전 심장 등 이 뛰고 있는 상태에서 소의 배를 갈라 직경 10㎝ 가량의 호스를 심장에 꽂고 30∼50ℓ의 물이 순식간에 온몸에 스며들도록 하는 등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이들은 비위생적인 지하수를 끌어올려 작업장 옥상의 물탱크에 저장한 뒤 수압을 높여 소에 물을 먹여 왔다.
또 소의 근육에 물이 쉽게 배도록 봉고 차 뒤에 체인으로 소를 매달아 탈수상태로 쓰러질 때까지 2백여 평의 도축장 주위를 끌고 다녔다.
경찰이 급습한 당시에도 도축장 내에서는 젖소 한 마리가 봉고 차에 매달린 채 탈진해 쓰러져 있었으며 2개의 작업장내에서는 호스를 이용, 한창 물을 넣는 중이었다.
경찰조사 결과 도축대상인 다 자란 소는 평균 4백㎏이나 물을 먹일 경우 체중이 30∼50㎏까지 불어난다는 것.
이들은 도축 사 등 종업원 26명으로부터 「회사 내에서 일어난 일들을 절대로 발설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아 비밀이 새 나가지 않도록 했다.
또한 이들은 물 먹인 소를 운반하는 냉동 차를 개조, 냉동실 밑바닥에 4개의 파이프를 설치해 고기에서 흘러나온 물이 밖으로 흘러 나가도록 했다.
경찰은 이 외에도 이들이 도살한 소의 반출 증을 허위로 작성해 수억 원대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를 잡고 수사중이다.
경찰은 또 도축장에서 병든 소나 물 먹인 소를 도살하지 못하도록 감독해야 할 경기도청소속 수의사 유제만씨(45)가 이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범행을 눈감아 주었는지 여부도 조사중이다.
축협중앙 회에 따르면 서울에서 하룻 동안 소비되는 쇠고기는 소 1천 마리 분.
이들이 하루 도살한 70마리가 대부분 서울로 반입되는 점으로 미루어 서울시내 쇠고기 중 적어도 7%는 물 먹인 쇠고기란 계산이다.
현재 서울에는 가락 동 농협중앙공판장, 마양동 우성기업, 독산동 협진기업 등 3대 도축장이 있으며 이번에 적발된 제일식품은 지방에서는 최대규모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물 먹인 쇠고기는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으나 물을 먹인 즉시 냉동 차에 얼려 무게를 늘리므로 녹을 때 고기가 푸석푸석 해지고 맛·고기 질이 크게 떨어진다.
이들은 서울 마장동·독산동 우시장 일대 등의 정육점 2백여 개를 통해 쇠고기를 공급해 왔다.
경찰은 이번 사건이 축협과 축산기업조합 등 관계기관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경리장부 등을 압수하는 등 관계공무원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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