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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관광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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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금강산 관광이 앞날을 점칠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는 가운데 18일 금강산 관광을 마친 여행객들이 동해선 남북출입사무소로 돌아오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 고민
북 제재 틀은 잡았지만 효과 기대하기 어려워
정부 일각서도 "안이한 대처" 자성론
라이스 다녀간 후 추가조치 검토할 듯

북한 핵실험 감행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북 제재 방안이 구체적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정부는 금강산 관광에 투입되는 정부 보조금을 차단하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 이미 쌀.비료 지원 중단 같은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구체적 항목을 따져보면 제재의 효과를 내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제재 불가피해지자 내놓은 고육책=관광보조금 지급 중단은 상징적 제재 조치라는 의미를 가질 수는 있다. 1998년 11월 출범 이후 '대북 포용정책의 꽃'으로 자리한 금강산 관광에 정부가 재정적 지원을 끊는다는 측면에서다.

그렇지만 대북 제재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총 4500억원에 이르는 그동안의 관광 대가에 비해 연간 수십억원 수준에 불과한 금액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올해의 경우 7월 미사일 발사 사태로 방학 중 교사.학생의 체험학습은 중단된 상태다. 그래서 금강산 관광을'북한 정권에 돈을 주기 위해 고안된 것'(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17일 발언)이란 미국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내금강 관광이나 개성지역 관광 사업의 승인을 해주지 않는 것도 효과적인 제재방안으로 내세우기에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안은 이미 불가능해졌거나 미래에 다가올 사업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란 점에서다. 이미 유보된 대북 수해물자 지원 중단도 마찬가지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18일 힐 차관보에게 미사일 발사 후 쌀.비료 지원 중단을 언급하면서 "미국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현재 북한과 끊고 있는 게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는 내심 미.일을 포함한 국제사회는 물론 국내 비판 여론에 맞설 대응논리를 찾는 데 고심하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유엔 결의안 채택에도 불구하고 "금강산.개성공단은 관계없다"며 안이하게 대처했던 데 대한 자성론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한국이 핵실험 이후 내놓은 대북 제재 카드가 무엇이냐"며 "잘못하면 한국이 고립되면서 미국은 미국대로의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향후 대북 제재 절차=15일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1718호)는 30일 이내에 모든 회원국은 대북 제재를 이행하기 위해 취한 조치를 보고토록 명시했다. 한국도 북한에 대한 제재를 계획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으로 보인 뒤 결과를 통보해야 한다.

안보리 제재위가 제재 대상(인물.기관)과 품목을 정하면 이에 따른 후속조치도 취해야 한다. 금수(禁輸)품목이 추가로 나오면 산업자원부 고시를 낸다. 또 북한 기업에 금융 자산 동결 조치가 취해지면 재경부는 외환관리법에 따라 대응해야 한다. 통일부 당국자는 "그동안 자동 반입되던 포괄 승인 품목도 유엔 제재위가 사치품으로 규정하면 승인을 필요로 하는 품목으로 바뀌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금강산 보조금 지급 외에 어떤 제재 조치를 추가할지를 검토 중이다. 최종 결정은 19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꺼낼 카드를 확인한 뒤 이뤄질 예정이다.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이 주재하는 관계부처 차관보급 회의에서 확정해 늦어도 다음주에는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이영종.이상언 기자

현정은 고민
"현대 집안 적통성 상징 대북사업 포기 못한다"
현대아산, 관광 대가로 현금 대신 쌀 검토
범 현대그룹선 '현대' 이름 거론에 당혹감

현대아산이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주력인 금강산 관광 사업이 바람 앞의 등불인데도 뾰족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은 줄곧 "관광객이 한 명만 있어도 금강산에 가겠다"며 사업을 계속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금강산 관광 사업은 개성공단 사업과 더불어 현대아산의 주력 사업이다. 현대아산은 지난해 매출의 40%를 금강산에서, 55%는 개성공단에서 올렸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또 현대그룹과 현정은 회장의 '적통성'을 뒷받침해 주는 주춧돌이기도 하다.

정상영 KCC 회장 등은 2003년부터 최근까지 "현대는 정씨가 운영해야 한다"며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공격했었고, 그때마다 현 회장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시작한 대북 사업을 이어가는 현대그룹이야말로 적통(嫡統)"이라며 맞섰다.

◆ 아무리 고민해도 묘안이 없다=금강산 관광 사업은 현대아산만의 의지로 끌고 가거나 중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와 한국에 대한 동참 요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중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은 금강산 관광을 핵개발의 자금줄로 지목하며 한국 정부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19일 방한하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이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식 요청하리란 전망도 나온다.

현대아산은 나름대로 대책 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묘안이 없어 고심 중이다. 현재 검토 중인 방안은 관광 대가로 북한에 현금 대신 쌀 등 현물을 주는 것 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이 현물 제공을 선선히 받아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 범 현대가(家)까지 번지는 불똥=금강산 관광사업 논란의 파장은 현대.기아차그룹 등 범 현대그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북핵 사태와 관련해 '현대'라는 이름이 미국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데 당혹감을 나타내고 있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현대차가 한창 잘나가는 판에 소비자들이 오해해 타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며 "현대아산과 현대자동차가 다른 회사라고 설명해 줄 뿐, 별다른 조치를 취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건설도 해외 수주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현대산업개발.현대해상.KCC 등은 "(금강산 관광 중단 여부는) 우리가 입장을 표명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권혁주.나현철 기자

◆ 조선 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아태평위)=아시아.태평양 지역 미수교 국가들과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해 1994년 설립된 노동당 외곽단체. 김용순의 사망으로 위원장은 현재 공석이며, 이종혁 부위원장이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당 통일전선부 소속으로 각종 학술회의 개최, 금강산 관광 사업 등 남북 간의 민간교류와 경제협력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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