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루주」정권 장악“무득”판단/미 캄보디아반군 승인 철회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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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동경회의 이후 헹삼린정권 입지 약화/미,단교했던 월과 대화제의도 주목
베이커 미국무장관이 18일 캄보디아문제 해결을 위해 베트남과의 대화를 제의하고 나선 것은 미국이 지금까지 유지해온 반베트남­반정부세력 지원정책을 크게 수정한 것으로 매우 주목된다.
그동안 미국은 소련과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헹삼린정권을 반대하고 중국과 함께 시아누크가 이끄는 반정부세력을 지원해 왔다.
78년 12월 베트남의 지원을 받아 결성된 캄보디아 구국민족통일 전선은 이듬해 1월 수도 프놈펜을 장악하고 친베트남 괴뢰정부(헹삼린정권)을 세웠다.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민주캄보디아(크메르루주)는 태국국경부근으로 도주,이 지역을 중심으로 게릴라 활동을 벌였으며 82년 7월 시아누크파ㆍ크메르 인민민족해방전선과 3파 합동으로 연합정부를 구성하고 항전을 계속해 왔다.
헹삼린정권은 그동안 베트남의 지원으로 반군세력의 공세를 잘 견뎌 왔으나 지난해 9월 베트남군이 철수하면서부터 수세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 지난 봄부터 반군은 공세를 강화,서부 및 북서부지역의 주요 거점도시들을 차례로 장악했으며,이러한 유리한 입장에서 지난 6월4∼5일 일본 동경에서 열린 캄보디아평화회의에 임했었다.
그러나 동경회의는 시아누크대통령과 1대1입장을 주장하는 헹삼린정권측에 대해 반정부 3개 파벌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크메르 루주가 합당한 지분을 요구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헹삼린정권은 크메르루주가 지난 70년대 후반 약 2백만명의 캄보디아인들을 학살한 책임이 있음을 들어 회담의 주도권을 인정할 수 없음을 강력 주장해 왔다.
동경회의가 실패로 끝난후 크메르 루주는 헹삼린정권에 대한 공세를 강화,전세를 유리하게 이끌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계속될 경우 헹삼린정권은 정권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미국이 지금까지의 정책을 바꿔 반군승인 철회와 베트남과의 대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과거 악명높았던 크메르 루주의 정권장악이 미국에 결코 이로울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다.
이와 함께 고려돼야 할 또다른 요소는 미국의 대베트남정책의 변화다. 지난 75년 베트남전쟁에서 패배한후 미국은 베트남과 일체의 공식접촉을 끊는 한편 외교ㆍ경제적으로 베트남을 고립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최근 베트남은 도이모이(쇄신) 정책을 표방하고 정치적 개혁 및 개방,그리고 경제개혁을 추진하면서 대미관계개선을 희망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은 극도의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외국으로부터의 경제 협력 및 투자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 경제에 있어 절대적 존재인 소련과의 교역관계가 올해말부터 완전히 「상업적 관계」로 전환될 경우 치명적 피해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전문가들은 미국의 베트남에 대한 경제 봉쇄가 계속될 경우 베트남정부내의 진보적 세력들이 큰 타격을 받을 것이며,그렇게 될 경우 베트남은 또다시 경직된 고립노선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이번 베이커장관의 발언은 캄보디아문제에 대한 미국의 발언권을 강화시키는 동시에 그동안 미국의 대동남아 정책에서 가장 큰 숙제였던 베트남과의 관계개선을 노리는 양면적 포석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정우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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